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319 반가운 비

호호아줌마v 2025. 7. 21. 03:33


당신은 내가 왜 비를 좋아하는지 아시나요?
조금 유치하긴 하지만, 어렸을 때는 하늘 위에 있는 신이 흘리는 눈물인 듯해서 비를 싫어했었어요.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지만 말이에요. 그러던 어느 날, 국민학생 때 여동생과 싸우고 부모님께 왕창 혼나고 문방구에 아이스크림 사러 갔던 날이었어요. 콜라맛 쭈쭈바 하나를 입에 물고 신나는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비가 내렸어요. 우산 없이 옷이 흠뻑 젖을 때까지 비를 맞다 보니 비를 맞는 게 찝찝하거나 싫지 않아 졌어요. 왠지 하늘에 있는 신이 나를 위해 울어준다고 생각하니 위로받는 느낌도 들고 말이에요. 빗속을 걷다 보니 즐겁기도 하고, 물웅덩이를 뛰어서 착지하며 물을 튀기는 것도 웃겨서 콧노래도 흥얼거리게 되고, 춤도 절로 나왔어요. 그때부터였던 거 같아요. 싫었던 비가 좋아하는 계기가 된 건 말이에요.
지금은 비오기 전에 어둑한 하늘을 마주하면 묘한 감정이 들어요. 감정은 서서히, 가랑비처럼 스며들 듯이 당신을 내게 데려와요. 비와 당신은 공통점이 하나 있거든요.  굉장히 좋아하고,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요.

문득, 구름은 어둠의 장막을 넓혀가며 세찬 비를 몰고 왔어요. 하염없이 기다리던 비를 우산 속으로 마냥 피할 수는 없었어요. 너무 반가웠거든요. 내게는 말이죠.
집 앞 공원까지는 우산을 얌전히 쓰고 나갔어요. 벤치에서 잠시 고민을 해야 했지만요. 내가 사는 동네니까요.. 많이 내리는 비로 인해 공원을 지나는 사람은 없었고, 나는 조용히 우산을 접어 벤치 위에 올렸어요. 접은 우산 사이로 휴대전화를 넣어두고서요. 그런 다음, 빗속을 달렸어요... 차가운 비가 몸을 적셨어요. 순간 모든 것이 좋았어요. 내 몸을 타고 흐르는 차가운 느낌이 좋았고, 몸이 젖은 느낌도 좋았어요. 나무와 땅 위로 떨어지는 빗줄기도 아름다웠고, 나뭇잎과 내 손등, 팔등에 맺힌 빗방울도 아름다웠어요.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가 얼굴을 때려도 마냥 행복했어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자유로움 울 느낄 수 있었거든요. 누군가 그런 나를 보았다면 혀를 끌끌 차며 미쳤다고 했을 거예요.

여전히 당신의 사랑은 없지만, 내 기억은 여전히 젖고 있어요.
빗방울처럼 떨어지는 그리움이 마음에 스며들어요.

후, 빗속을 달리다 당신에게 달려가고 싶은 걸 겨우 참아야 했어요. 당장이라도 당신 품에 안기고 싶었거든요. 매번 이런 식이에요. 무얼 하던지 항상 끝은 당신으로 향하는 것..

쫄딱 젖은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합니다. 중문 앞에는 수건 여러 장을 줄지어 두었지요. 욕실로 향하는 길에 필요하니깐요.
여기서 관건이에요. 잔뜩 비에 젖은 옷은 벗겨내기 힘들거든요. 무척이나 말이죠. 욕조에 뜨거운 물로 채우고서 알몸을 담가요. 내내 추웠던 몸이 일순간 노곤노곤해지고 긴장하고 있던 몸이 사르르 녹는다는 표현이 맞을 거예요. 가만히 앉아 조용히 책을 읽어도 좋고요, 욕조에 몸을 기대고 당신을 떠올려도 좋은 시간이에요. 이번엔 책대신 당신을 생각하기로 했어요.




#당신 품에 안기고 싶어요

당신을 욕조로 끌어오고 싶었어요. 예쁘게 눈꼬리 내린 당신의 눈을 마주하고서 말이에요.

욕조 안에서 당신을 그리워하다 그만, 당신의 보드라운 손길이 떠올라버렸어요. 당신을 대신할 순 없지만, 당신을 대신해야 했어요. 날 만지는 내 손은 더 이상 내 손이 아니었어요. 그건 단지 당신의 손길이었죠.
따뜻한 물과 함께 내 손이 내게 밀려들어왔고, 나는 순간 어지러웠어요. 당신이 필요했어요. 무진장이요. 두 뺨은 한껏 상기되어 붉어졌고요, 욕조 안에서 나는 몸을 베베 꼬아야만 했어요. 차가운 몸이 따뜻한 물속에서 나른해졌어요. 따뜻한 물은 미지근한 온도로 변했죠. 그 덕에 당신의 품에 있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게 되었어요. 간질거렸어요. 당신이 무척 필요했거든요.. 당신을 내 품으로 확ㅡ당겨오고 싶었어요.  겨우 참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