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1-301 무릇, 사랑은

#우연이라도 마주쳐요, 우리.
입안에서 맴도는 수많은 말들이 끝내 목구멍을 넘지 못했고, 그것을 나는 몹시 후회하고 있어요. 나는 당신을 대단히 경애하고 있거든요. 당신에게 가서 얘기했어야 했어요. 난 당신을 동경하고, 경애하고, 좋아하고, 사랑한다고요.
우리, 우연인 척 마주치면 절대 안 되는 거죠?
실수인 척 찾아가면 절대 안 되는 거잖아요, 그렇죠?
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당신 마음에 몇 번이고 걸려 넘어지고 싶어요. 당신에게서 내가 쉬이 잊히기는 싫단 말이에요...
나에겐 당신이 그리움으로 머물지만, 당신은 내가 귀찮음으로 머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그것이 나는 몹시도 아프거든요.
안녕하신가요.
잘 지내시냐는 인사도, 평안하시냐는 말도 편하게 물을 수 없는 관계지만, 편지를 핑계로 안부를 물어봅니다.
"당신은 안녕하신가요?"
말로는 다하지 못한 진심들을 글로 담을 수 있기 때문에 나는 글 쓰기를 좋아하나 봐요. 허나, 이 글들은 당신에게 가닿지 않으니 쓸모없는 글이죠. 그럼에도 쓰는 건,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나의 마음을 위함이에요. 나를 허망하게 아프게 하면서도 당신을 그리워해야 하니 당신은 부디 잘 살고 있기를 바라요.
부치지 못한_ 부치지 않은 편지는 죽은 자의 유언과 같아요. 당신에게 다시 편지를 쓸 수 없기에_ 더 이상 남아있을 것이 없는 삶에서 내 남은 감정을 모조리 쏟아붓는 유언과 매우 흡사하죠. 도달할 수 없게 된 '당신"은 죽음이에요. 모든 것을 낱낱이, 간절하게, 정교하게 써 내려가요.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 여유를 부리지 못하는 자는 오늘도 당신에게 유언과도 같은 편지를 애절히 써요.
한 자 한 자 채워나가는 글에는 간절히 마음을 다해 바라는 일, 당신이 날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어차피 보지 않을 당신에게..
있잖아요.
나는 당신을 생각하면 마음이 참 어지러워요. 한 사람이 살면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을 당신으로 대부분 겪었고, 여전히 겪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슬픔, 애달픔, 동경, 경애, 애경, 설렘, 분노, 애틋, 질투, 불편이 있고요, 그 끝에 아주 간신히 안쓰러움과 사랑이 매달려있어요. 하루가 끝나 모두가 잠든 새벽, 차가운 숨 뱉으며 한없이 온기 가득한 따뜻한 글자를 만들어요. 분명 온기 가득한 글을 썼는데도 내가 쓰면 죄다 슬픈 글이 되어버리네요.
"왜 나는 아닌가요.
그러면서, 왜 나를 곁에 두게 하는 건가요"
당신은 내게 다정했어요. 나는 그 다정함에 필사적으로 매달렸지만, 당신은 묵인했죠. 그냥 싫다는 말 한마디면 되었을 텐데....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당신이 나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사랑해주지도 않을 거면서, 왜 내가 당신 곁을 맴돌게 하는 건데요. (착하셔서 그러신 건가...?)
매일 밤 따져 묻는 상상을 수도 없이 하는데, 당신의 대답이 불 보듯 빤하여 직접 물을 용기는 없어요.
"안쓰러워서요"
직접 당신 입으로 저 말을 들을 자신이 없어요. 그래서 모른 척하는 편에 서 있는 거예요. 조금은 비겁해도 어쩔 수 없어요. 지금 내가 하는 짝사랑, 아니 외사랑만으로도 생채기를 내고 있는데, 자처해서 내게 상처를 낼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무릇, 사랑은 닿는 곳마다 슬픈 법인가 봅니다. 온통 슬픔만이 남아있거든요.
그런데도 나는 당신이 너무 좋아요.
어림 반푼어치도 안 되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고, 속절없어요..
조용하게 눈꼬리 아래로 늘어뜨리고 웃는 당신 모습이 자꾸 맴도는걸요? 길바닥에 덩그러니 서 있는 당신 모습이 쉼 없이 떠오르는걸요? 모든 행동과 말투에서 다정과 로망이 빼곡한 모습인걸요..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냐는 말이에요.
말했잖아요, 나의 존재가 당신을 사랑하기 위함 인 것 마냥 굴고 있다고요. 그런데 그런 내게 당신을 그만 사랑하라고는 못하겠어요. 그건 내게 죽으라고 하는 말이니까요..
나 그냥 계속 당신을 사랑하면 안 될까요.
누구나 비밀하나는 가슴에 품고 산다잖아요. 그 비밀을 꽁꽁 감춘 채 살아내면, 살아가면, 살아지지 않을까요.
설마 죽을 때까지 당신을 이렇게 애타게 원하고, 사무치고 그리워하고 그러지 않겠죠. 점점 덜해지겠죠? 그래야 해요..
당신을 사랑하는 일도, 사랑하지 않는 일도 그게 어느 쪽이든 내게 쉬운 일은 단 하나도 없어요. 죽어버렸으면 좋겠어요. 마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