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1-299 소리없는 아우성

#차라리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했다
멀쩡하다가도 한순간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를 보지 않으면 못 살겠는데 나더러 어쩌라고.. 내가 하는 사랑에 형벌이 있다면, 영혼이 쪼개지는 느낌이 아닐까 싶다. 내 영혼이 길을 잃는 형벌을 지금 받고 있는 중이다.
본의 아니게, 의도치 않게 그는 나를 자꾸만 살게 만든다. 처음 만났을 때도, 지금도 여전히 내게 계속 살라고 한다.
"밥 같이 먹을래요?"
편집이 끝나면 다음 작업날까지 그를 보지 못한다. 그 긴 시간, 사무치는 그리움에 서서히 말라 죽는 나를 위해.. 그는 내게 또 살라고, 살아내라고 구원했다. 죽음을 코 앞에 둔 어린양을 그의 한마디에 나는 구원받았다.
그가 내게 준 겨울은.. 얼어 죽을 만큼 차갑고, 녹아내릴 만큼 뜨거웠다. 그는 날 구원할 구원자이면서 동시에 악의 구렁텅이에 빠뜨릴 자가 분명하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그에게 미치도록 얽히고 싶어 한다.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를 한다. 내가 하염없이 가여웠을 테지. 사랑하면 안 되는 사람을 이렇게나 절절히 사랑하고 있는데, 그가 내게 줄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으니 말이다. 그가 내게 같이 밥을 먹자고 하는 말은 단순히 끼니를 때우자는 의미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배려와 다정하고 세심한 배려는 감사하기도 했지만, 나를 더 안달나게 만들었다.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 파란 하늘 아래, 그와 나는 나란히 걸었다. 그 속에서 감정이라는 게 자꾸만 정리되지 않은 채 부유하고 있었다.
"편집장님, 저랑 자리 바꿔요. 내리막 길에 있으니 내가 너무 작은 거 같아요..."
"네^^"
안 그래도 작은데 그 옆에 있으니 더 작아 보여 심술이 났다. 심술이든 미움이든 그에게서 미운 감정들은 항상 오래가지 못했다. 고개만 돌리면 그의 모습에 자꾸만 입꼬리는 올라갔고, 자주 다니던 길은 내게 마치 꽃길과도 같았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그의 시선은 내게 머물러있었다. 연인들은 모두 다 이러고 데이트하겠지? 세상 모든 연인들이 부러워 죄다 사랑을 깨트리고 싶은 충동과 갑자기 또 못된 심술이 피어올랐다. 그의 사랑을 당연하게 받고 있는 자는 당최 얼마나 행복할까. 설마 그를 다 가졌음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건 아니겠지? 그랬다간 가만두지 않겠다... 뭐 그런? 구질구질하고 아주 쪼잔한 마음들이 들쑥날쑥거렸다.
"편집장님, 여기 어딘지 봐주세요"
핸드폰에 나온 지도를 그의 눈앞으로 손을 뻗어 보였다. 그는 진중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보았다. 그 모습이 마냥 웃겼다. 진중한 일이 결코 아니었음에도 그의 미간은 좁아지고, 표정은 꽤나 진지했다. 귀여웠다. 올라가는 입꼬리를 꾹 참아내야만 했다.
뭐 먹을지 메뉴를 정하고, 맛집을 같이 찾는 이 평범하고도 소소한 행위가 데이트하는 것 마냥 설레었다. 심장이 터질 만큼. 나는 그를 바라보기만 해도 너무 행복했다. 그런 그가 내 옆에 있었고, 나와 같은 목적지로 향해 걷고있었다. 설렘과 애틋 사이에서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그의 옆에 있을 수만 있다면 죽음은 한순간에 그 따위가 되고 말았다. 그는 내게 가슴 저미는 아픔이 되고 때로는 깊은 상처를 준다. 사랑이 전부였던_ 그가 내 전부였던 삶에서 사랑이 사라진 자리에는 텅 빈 공허함만 남을 테지.. 현실을 부정할 수 없으니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없음에, 가슴앓이는 피해 갈 수 없는 숙명과도 같다. 그를 볼 수 없는 삶은, 삶의 의욕마저 잃게 되어버리기에, 사랑과 감성에 충실하게 절절한 고뇌를 느끼게 했다. 윤리적인 죄책감은 그를 향한 절절한 사랑을 모든 것을 건 도박 같은 시도에 절망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랑은 언제쯤 끝이 날까...
"평일에 바쁘세요?"
'저.. 평일에 독자들과 팬미팅하는데 오실 수 있어요?'
"요즘 좀 바빠요"
대답하지 않아도 바쁜 걸 알고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지 못했고, 그는 바쁘다고 답했다. 마주 보고 앉은 그의 모습은 그토록 수없이 많은 밤에 그려보았던 모습 그대로였다. 식충이 버금가는 식욕도 그 앞에선 명함도 내비치지 못했다. 배가 고팠다. 아니, 배가 고픈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그의 사랑에 고팠던 것이었다. 배고픔이라고 생각했던 건 그에 대한 허기짐이었다. 그는 내가 아무리 악을 쓰고, 발버둥 쳐도 가질 수 없는 사람이었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주고서도 가질 수 없는 사람이었다.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를 향한 마음을 지키며 산다는 것은, 순리를 지켜도 전하지 못한 사랑이 되었고,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며 산다는 것은, 계절에 따라 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헛헛함을 끌어안고 산다는 것이다.
그와 내가 함께하는 모든 순간에서 그는 그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다정함과 배려를 내게 보여주었다. 그의 서툴고 이상한 모양새로 젓가락질을 쉼 없이 움직여 내 앞접시에는 음식들을 쌓았다. 그는 나의 로망이고, 나의 유일한 뮤즈이다.
밥공기를 들고 서툰 젓가락질로 와아앙 먹는 그의 모습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입에 한거석 넣고는 나를 자꾸만 쳐다보는 통에 밥이 코꾸녕으로 들어가는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그의 양볼은 살이 쪄서 인지 아니면 밥을 와앙 밀어 넣어서 인지 모를 정도로 통통해졌고, 눈꼬리는 계속 아래로 쳐져있었다. 이렇게*^^*
에먼 맨밥만 욱여넣을 수밖에 없었다. 헤벌쭉하고 그를 쳐다보고만 있었으면... 분명 그가 부담스러웠을 테니까.. 그래도 자꾸 그에게 눈이 가는 걸 막을 순 없었다... 보고 싶었으니까. 너무 긴 시간 그를 보지 못했으니까.. 이따금씩 그를 마주보고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벅찼다. 또 못나고 미운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매일 그와 함께 식사를 하는 자는 매일매일이 로망과 낭만으로 가득하겠지? 썅. 살만 뒤룩뒤룩 찌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어 조금은 창피했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나의 허기짐을 빠르게 채워나갔다.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세상에서 함께 하고 싶어졌다.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나올까 봐 말을 아껴야 했다.
그는 내게 그리 따뜻하지 말지
나는 그를 그리 사랑하지 말걸
빛나지 않아도 괜찮았던 날을, 그와 함께 했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나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로 기억되어 지워지지 않는 슬픈 추억으로 남았다.
"뭐든 잘하시니깐. 하나씩 극복해 보세요"
"무서워요..."
'당신이 내 옆에 있어주세요...'
"다음에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네! 좋아요^^"
'맛있는 거 필요 없어요. 나는 당신만 필요해요'
"왜 갑자기 차타니깐 긴장 하세요?"
"졸음 운전하실까 봐서요^^"
'곧 당신과 헤어져야 하니깐요...'
"다음에 사탕 사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사탕도 필요 없다니깐요.. 당신만 있으면 돼요'
'날 데려가세요'
'나를 두고 가지 마요'
'날 사랑해줘요'
소리없는 아우성만이 그에게 간절히 닿기를 바랐지만, 그는 결코 알 길이 없고, 알아도 변하는 건 없다는 사실 또한 분명했다.

#돌아와요, 당신.
단 한 걸음이면 됩니다. 그 걸음을 당신이 먼저 내디뎌주기를...
수없이 나는 당신에게 가는 상상을 해요. 그런데 당신을 잘 모르겠어요. 날 좋아하는 건 맞는 거죠? 사랑만 아니라는 거죠? 그쵸? 연민과 동정이 아니라, 좋아하는 마음은 갖고 있는 거지요?
당신이 내게 와줘요. 한 걸음이면 되요.
모르셨지요.. 요즘 왜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지를요..
당신을 그리워하며 걷다 넘어진 적이 꽤 있었어요. 그런 나를 보고 칠칠 맞게 보실까봐 더워도 청바지를 고집해요.. 그리고 당신을 보고 싶어 하다가 몸 져 누운 적도 있고요, 문자 오는 소리에 혹시 당신일까봐 엄청 빠른 속도로 핸드폰을 확인하고요, 비 오는 날에는 혹시 나를 떠올려 연락하지 않을까해서 핸드폰 진동도 늘 풀어놔요.. 그러니 내게 오시라고요.. 와달라고요..
당신 없인 힘들어요.
내가 어둠 할테니, 당신은 달 하세요.
모든 어둠은 내가 맡을터이니, 당신은 밝고 빛나는 달 하시면 되잖아요. 손해보는 장사는 아닐거에요.
그러니 내게 오시라고요..
나한테는 당신이 있어야 해요.
단 한 걸음이면 충분해요. 나머진 내가 가면 되니까요.
나를 사랑하세요.
이 여름에 내가 당신을 절절하게 사랑한다고 말해도 될까요. 당신을 좋아하고 부터 내가 원래 좋아했던 것들이 죄다 하나같이 탐탁지 않아요. 계절이 특히 그래요. 한 계절만 당신을 사랑할 걸 그랬나봐요. 그러면 한 계절만 당신을 그리워하면 될테니까요. 지금은 모든 계절이 당신을 그리워하게 찬란하게 나를 마구 막막 흔들어놔요. 당신이 나를 지나칠 때마다 잡을 용기도 없으면서, 놓아줄 용기도 없어 매번 이렇게 당신을 계절에 묶여 떠나보냅니다.
나는요.당신을 오래 보고 싶어요.
사귀지 않아도요.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아도.
그저 오래 당신 옆에 있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