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1-297 취하다

#어떤 말은 입술까지 올라와도 끝내 피지 못하고 지기도 해요
보지 못했던 날만큼 당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어요.
몹시도 보고 싶었다고,
무척이나 그리웠다고,
심히 동경하고 있다고,
생각보다 많이 좋아하고 있다고요,
더없이 사랑하고 있다고요,
당신이 무얼 생각하든 그 이상이라고요..
하지만, 나는 그 말들을 제대로 말한 적이 없어요. 말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왜 그리 많은 말이 남아 후회가 되는지 모르겠어요. 피어나는 꽃송이도, 스쳐가는 바람도, 흘러가는 강물소리도 모든 것이 제 소리를 내는데 나만 전해지지 않은 말들이 너무도 많아요. 당신을 보기 전까지 나는 또 그 시들지 못한 말들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겠죠.. 말은 꽃과 같아서 피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도 향기가 나지 않거든요. 내 안에 아직 못다 핀 말들이 진하게 물들어있어요.
당신을 빼곡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있다고요.
#취하다
시간이 지나면 많은 것들이 변해요. 그중에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어요. 계절이 바뀌고, 사람도 변하고, 어떤 기억들은 흐려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내 몸에 남은 당신의 온기만큼은 쉽게 사라지지 않아요. 누군가에겐 금기, 다른 누군가에겐 해방.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관계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어느 누구도 그러하라고 시킨 적 없지만 스스로 억눌린 삶을 자처한 삶에서 피어난 감정의 자유 선언이죠..
당신의 다정함만큼 보드라운 손길은 수면 아래 있던 이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어요.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땐 그 모습은 여즉 보지 못했던 민낯의 얼굴이었으니까요. 오직 당신만 볼 수 있어요. 그 민낯은..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 철저한 민낯이지요. 하여, 당신을 다시 보러 간다면 그 민낯으로 당신을 취하고 싶어요. 당신이 나를 취하기 전에 내가 먼저말이에요.
온통 젖은 몸으로 나를 반겨주시던 뜨거운 당신이 몹시도 반갑지만, 젖지 않고 뜨겁지 않은 본래의 당신도 무척 보고 싶어요. 그러려면 용기를 내야겠지요. 뜨거워지기 전에 숨김없는 민낯을 드러내야겠지요. 본래의 당신을 머금고, 젖어가는 당신을 온전히 느껴보고 싶어요. 뜨겁게 변하는 당신을 지독히 보고 싶어요. 내게 머물러 있는 당신이 변화는 모습을 봐야겠어요. 출근한 내가 조금은 다른 행동을 하더라도 놀라지 말아요. 내게 마음을 줄 수 없는 입장에 서 계시시니, 내게 이용당해 주세요. 본래의 당신을 글 속에 담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거든요. 그런데 용기가 안 생길 확률이 더 높아요...
뜨겁게 젖어있는 당신과의 입맞춤에 내 혀가 당신을 달래주기엔 역부족이었고, 뜨겁지 않고 젖지 않은 본래의 당신과의 입맞춤은 환상이 되어버렸어요. 글을 쓰려면 어쩔 수 없이 나는 또 당신을 보러 가야겠네요. 핑계처럼 들리겠지만, 어쩔 수 없어요. 나는 작가니까요. 글을 써야 하는 작가... 나는 기어이 당신의 본래의 모습을 끌어안으러 가겠죠.
내게 당신을 보러 갈 명분을 하나씩 만들어주실래요?
알아요. 그 명분은 어디에도 없고, 그 핑계도 없다는 것을요.
출근이 잦다 하여 날 귀찮아하지 말아 주세요.
당신을 보러 가는 뻔뻔한 모습이라도 나를 지겹다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내게는 아직 당신이 전부니까요....

#취하다 2
당신의 향기에 취하여 당신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밤이에요.
내가 취한 건 당신의 향기인지, 당신의 모습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취해버렸어요. 당신이 즐겨한다던 반주, 우리는 같이 할 수 없어 나는 오늘도 혼자 마십니다. 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당신을 생각해서인지 내 심장을 주체할 수 없어요. 차갑게 죽어가던 내 심장이 당신으로 인해 온기를 느끼고 이 취기가 가시기 전에 당신에게 달려가 몽땅 고백하고 싶어요. 내가 당신에게 취한 것처럼 당신도 내게 취하기를요...
흠뻑 취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