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2-10 이웃

#좋은 이웃
위기의 순간, 사람은 종종 진실한 선택을 한다. 감정을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꺼내 보인다. 그것은 상대에 대한 성숙한 태도이자, 함께 알고 지낸 시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그는 믿는 듯싶다. 나이를 먹는 만큼 모든 행동에 여유가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내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을 귀찮게 하는, 손이 많이 가는 스타일, 내가 그렇다. 익숙한 것만 추구하려 하고, 굳이 귀찮고 번거로워도 익숙한 것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그런 내게 그는 좋은 이웃이다.
일전에, 출근준비와 얘들 등원으로 바쁜 와중에 둘째가 찡얼거리며 안아달라고 했다. 안아줄 수 없는 상황을 설명하고, 한번 찐하게 안아주었다. 그런데도 마음이 풀어지지 않는 둘째가 장난감을 갖고 논다길래 그러라고 했다. 혼자 경찰과 범인 놀이를 하는 듯했고, 갑자기 내게 수갑을 채웠다. 내가 범인이었던 것이다. 본인과 놀아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야 하는 나였다. 그게 화근이었다. 바쁜 와중에 수갑을 풀 열쇠는 찾지 못했고, 첫째는 열쇠를 본적이 최근에 없다 했다... 결국 나는 얇은 가디건을 속목에 감고 얘들 등원길에 나섰다. 겨우 둘째가 유치원 차량에 올랐고, 아기 아빠와 함께 넷이 첫째 등굣길에 올랐다.
"엄마, 수갑 열쇠 못 찾으면 어떻게?"
"몰라... 아빠올 때까지 기다려야겠지?"
"수갑 차고 일하러 갈 거야?"
"아마도...... 그래야겠지ㅠ"
나와 아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던, 아기 아빠는 내 손목을 보고는 아주 크게 웃었다. 선한 눈매는 더 아래로 처지고, 입꼬리가 올라간 입은 활짝 벌려 크게 웃어댔다. 눈꼬리에는 눈물이 맺힐 만큼 웃겼나 보다... 그가 웃을 때 저런 모양과 소리를 내는구나 싶었다. 등교하는 사람들이 그를 힐끔거리며 쳐다보기 시작했다.
조금 거리를 두고 걸었다. 그가 냉큼 옆으로 아들과 왔고, 내게 물었다.
"수갑 차신 거예요?ㅎㅎㅎㅎㅎ"
"네..... 많이 웃기신가 봐요"
"아, 네 미안해요"
한참을 웃어젖히던 아기 아빠는 다시 내게 물었다.
"열쇠가 없어서 못 푸는 거죠? 어디 한번 봐요"
"싫어요.. 창피해요"
그는 또다시 눈꼬리를 늘어뜨리고 웃었다. 이번엔 크게 소리 내지 않았고, 눈을 반짝이며 웃었다. 아마 눈물 때문인 듯...
내 아들과 그의 아들은 교문 앞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했고, 그와 나는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는 길이었다.
"아파트 가로지르지 말고 절로 갑시다"
"네???? 왜요?????"
"창피하다면서요"
"아... 네"
횡단보도를 건너 다른 길로 가던 중에 다시 손목을 보자고 했고, 주위를 살피고 나는 수갑을 가린 가디건을 풀었다. 내 손목을 보고 그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힘과, 비눗물로 빼보려고 용을 쓴 덕에 손목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걸 힘으로 빼려고 하셨어요?"
다정스레 묻는 그의 말투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끄덕끄덕"
"열쇠 없으면 안 될 거 같은데... 혹시 이 수갑 잘라도 되면 잘라드릴게요"
"진짜요?"
"네^^ 제 차로 가요"
"감사해요^^"
나는 다시 하얀 가디건으로 손목을 감았다. 그가 해결해 준다는 말에 서로 부딪히며 내는 수갑의 달그락 소리가 더 이상 거슬리지 않았다.
"둘째가 수갑채운 거죠??^^"
그의 얼굴에는 또다시 함박웃음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여전히 수갑 차고 있는 내 모습이 우스웠나 보다..
"네^^;; 아침에 같이 안 놀아준다고.. 절 체포해서 감옥에 보내야 한다네요^^;;"
그는 다시 한번 소리 내서 웃었다.
"둘째 진짜 귀여워요 ㅋㅋㅋㅋㅋ"
"이제 그만 웃어요...."
"아, 미안해요. 근데 너무 귀여워서 ㅋㅋㅋ"
"근데 ** 아버님은 출근 안 하세요?"
"출근해요. 다들 저 백수인 줄 알던데 직장 있습니다!"
"아니.. 저 백수라고는 안 했어요"
"그 말이 그 말입니다^^"
"그런 뜻으로 한 말 아니에요. 진짜예요"
"알아요^^"
지하 4층 주차장, 그의 차 트렁크 앞에서 손목을 내밀고 섰다.
그게 또 웃긴 모양이었다. 연신 웃기만 했다. 뭘 찾는 건지 몰라도 엉망이 된 트렁크를 열심히 뒤적였다.
"찾았다! 자, 어디 봐요"
"저 안 다치게 해 주세요"
"걱정 말아요. 손~"
손목을 그에게 내밀었다. 수갑을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틈이 많은 손목으로 옮겨 이상하게 생긴 공구를 그 틈으로 밀어 넣었다.
"잠깐!!!!!! 아프지 않은 거 확실하죠?"
"네*^^* 확실해요^^"
정말 아프지 않았고, 조용한 지하 4층 수갑 자르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놀라 멈칫했다.
그가 내 손목을 뒤집으며, 걱정스레 한마디 했다.
"아프겠어요"
"괜찮아요. 덕분에 수갑 풀었어요. 감사합니다^^"
"아, 출근 늦었으면 제 차 타고 가실래요? 저도 출근해야 되는데"
"아뇨. 버스 타고 갈게요.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머리를 가볍게 숙여 인사를 하고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아기 아빠 덕분에 수갑을 차지 않고 출근할 수 있었다...ㅋㅋㅋㅋ
이 일 말고도 나는 그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남편이 긴 출장을 가 있을 작년 때 일이었다.
뭐 때문인지 차 시동이 걸리지 않았고, 출근이 늦어질 것이 분명했다. 남편과 영상통화로 차의 상태를 보여주고 내린 결론은 자동차 배터리 나갔다는 거였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불안이 조금 높은 터였고, 낯선 사람을 부르는 게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배터리가 나간 날은 버스를 타고 출근을 했었다. 뒷날 아침,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혼자 차에서 시동이 다시 걸리지 않을까 하고 시동을 걸고 있었다.
"배터리 나갔어요?"
"아, 안녕하세요. 남편이 그렇다고 하네요.."
"보험사 불렀어요?"
"아뇨..."
"???"
"아... 남편 오면 하려고요"
"출장 갔다면서요"
"아... 괜찮아요. 그냥 두면 돼요"
"시동 걸어드릴까요?"
"에?? 가능해요??"
"네네 캠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일단 차 좀 열어주세요"
아무리 시동을 걸어보려도 해도 안되던 차가 그가 손 본 후 시동이 걸렸다. 신기했고, 그가 멋있어 보였다. 덕분에 친정 아빠와 서비스 맡겨 배터리를 갈 수 있었다.

우리 동네에는 선수들이나 학생들이 참 많다. 그리고 찜질방이 있어 불량학생들도 종종 보인다. 담배를 피우거나, 여럿이 모여 바닥에 침을 뱉는....ㅠㅠ 만만하게 생긴 탓에 꼭 나는 일이 꼬인다. 육퇴하고 편의점에 팩소주 사러 갔었던 날이었다, 같은 옷을 입고 있는 학생인지 총각들인지 굉장히 많이 보였다. 아파트 입구에도 옆문에도 말이다. 낮에도 저렇게 있으면 저 사이로 비집고 들어갈 용기가 없는데 어두운 밤에는 더욱 용기가 나지 않았다.
우물쭈물하다가 남편에게 전화를 했지만, 씻는 건지 전화를 받지 않았고, 결국 나는 편의점에 앉아 그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학생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면서 한편으로는 아기 아빠도 지나가길 바라게 되었다. 좋은 이웃인데 하면서 말이다. 그를 기다리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