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294 다정한 음성

호호아줌마v 2025. 5. 25. 02:46



그는 내 이름을 부를 수 있지만, 나는 그를 이름으로 부를 수 없다.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마냥 기쁠 수 없었고, 그의 목소리는 여느 때처럼 평온했다.

나는 그의 고약한 비염과도 같은 존재였다.
귀찮고, 거슬리고, 신경 쓰이는...
당신은 또 그런 비염을 인내했다.
봄이 오면 봄이 오는 대로, 꽃이 떨어지면 바람에 날리는 대로
그에게 달라붙어 있는 마치 고약한 비염처럼...
그를 위해서 라면 내가 사라져야 하지만, 분명 알지만,
돌고 도는 계절마다 그의 코를 간지럼 태우고,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 따라 그의 코를 괴롭히고 마는.
아무리 포장을 해보아도 결국 나는 그의 고약한 비염이었다.
나는 그에게 떨어지는 꽃, 흩날리는 꽃잎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분명 아니다.
비록 비염일지라도 그와 함께 하고 싶었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의 행복을 바란다면서 이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 기어이 비염을 묵묵히 인내하고 있는 그에게 미안해서라도 이러면 안 되는 것이다.
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그를 잃지 않는 일이자, 그를 지키는 일이었다.



#당신의 다정함이 내 집이에요.

사랑이라기보다는 구원에 가까운 마음이에요.
자는 것조차 제대로 못해 약을 먹어야 했고, 그 덕에 공허함인지 무력함인지 우울증인지 모를 어둠이었을 때죠.. 시간적 여유와 경제적 여유가 갑자기 생기면서 덩달아 생긴 마음의 병으로 내가 나를 갈아먹고 있을 때, 그때 당신은 내게 구원이었어요. 당신이 중력을 거스르고 바닥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닮고 싶다'라고 생각한 사람이었어요. 그런 당신을 보고 내가 사람답게 살아도 괜찮겠다는 희미한 희망이 스며든 유일한 사람이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당신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직도 어둠이었을 수도 있겠어요. 어쩌면 당신은 나를 놓지 않게 하기 위해 나를 가엾이 여긴 신이 보내준 선물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거예요.
내가 당신을 쉽게 잊지 못하는 것은, 당신이 살아갈 이유였기 때문이에요. 나는 지금도 힘이 들 때면 가장 먼저 당신을 생각해요. 그러니, 내가 어떻게 당신을 쉽게 잊겠어요. 그러니까 내가 당신을 잊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요.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걸 극도로 싫어해요. 그래서 작가명을 전부 필명을 사용하는 이유 중 하나예요. 아빠가 몇 날며칠 머리를 싸매고 큰딸인 제게 지어주신 이름이거든요. 내게는 너무 소중한 이름이에요. 많이 불러야 좋다는 것도 알지만, 그런데도 너무 아까워 닳아 없어질 것만 같아서 불려지는 걸 싫어해요. 맞아요. 흔하죠? 그러나 뜻은 아니에요. 아무도 내 이름과 같은 한문을 쓰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아름답고 어진 여자로 세상을 살라는 뜻이거든요.. ^^ 한자사전에도 없고, 옥편에서야 찾아볼 수 있는 한자로 지어주신 아빠의 애정과 사랑이 듬뿍 담긴 이름이에요.
전화기 너머 들리는 다정한 당신의 목소리에 당황했어요. 그토록 그리워하는 당신이 받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거든요.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했어요. 하마터면 마음이 하는 소리를 내뱉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요...

'보고 싶어요, 편집장님'


내 마음과는 달리 평온한 당신의 음성에 마음이 쿡쿡 아팠어요. 나와 다른 마음이 나를 속상하게 했어요. 그런데 또 금방 사르르 풀리고 말았죠. 당신이 불러주는 내 이름 석자가 그렇게 따뜻한지 몰랐거든요. 원래 마음이 드는 이름인데, 그 이름을 당신이 불러주어 얼마나 설레었는지 당신은 아십니까.
오늘은 당신 부름이 그리운 날입니다. 보고 싶어요.

날 사랑해 주세요.
내가 당신을 보러 갈 날이 앞으로 무한하지 않아요. 당신이 보기엔 내가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 진 모르지만요, 말한 것처럼 강하지도 뻔뻔하지도 않아요. 그래서 당신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있지만, 마음이 마냥 편하진 않아요. 그걸 알면서도 당신을 꾸역꾸역 사랑하고 있는 나를 미련하다 하시겠지만.. 내 쪽에선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럴 수가 없는 걸 어떡하라고요...  혹시나 그런 방법이 있거든, 내게 알려주세요. 그게 뭐든 배울게요..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려 잔꾀를 부려봤어요. 당신과 조금, 아주 조금 닮은 사람을 당신이라 생각해보려 하는데요, 잘 되지가 않아요. 당신처럼 그 사람을 글 속에 집어넣고 당신인 척 만들어 보려 하지만 잘 안되네요. 그 마트, 택도 없이 어린 사람은 아니에요!!!! 마트 총각은 너무 어리기도 하고, 당신과 너무 닮았거든요.. 당신과 비슷한 점을 찾고, 닮은 점을 찾아봐도_ 나는 여전히 당신만을 찾아요. 당신을 찾고, 당신의 흔적을 찾아다닙니다.  당신을 사랑하고 많은 계절이 지나갔듯이 당신을 잊으려면 더 많은 계절이 지나야 하나 봅니다.

당신이 왜 날 사랑하지 않을까를 생각해 봤어요.. 그러다, 당신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당신 곁엔 어떤 사람이 어울릴지도요.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요. 당신 옆에 걸맞은 인물이 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당신의 이상형을 알아야 하는데 나는 그럴 수 없죠.. 분명, 눈이 높을 거 같은데. 당신이 사랑하는 여자는 예쁘다고 했었으니... 그럼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는 말이죠? 나는... 당신 옆에 나란히 설 경우, 그림체가 영 아니려나요. 누가 당신과 나를 엮어줬으면 좋겠어요. 꽁꽁 엮어 떨어질 수 없게 말이에요. 그렇게 되면 날씨에게 내 마음을  전해달라고 부탁하는 일도 없을 텐데요. 바람 불거든_내 마음 실어 당신께 가져다주라고 사정하고요, 잔뜩 흐리거든_무겁고 슬픈 사랑을 구름에 실어 당신께 전해달라 간청하고요, 해가 쨍하거든_ 맑은 하늘 보고 나를 떠올리게 잔뜩 쨍하기를 당부해요.  비가 내리거든_ 비를 좋아하는 내가 당신을 보러 왔다고 알게 해 달라고 애원하게 됩니다. 당신의 바짓가랑이도 잡고 심정. 그래서라도 당신이 날 사랑해 준다면 나는 더한 일도 할 수 있어요. 나는요, 여태 당신을 허투루 좋아한 적 없고요, 단 한순간도 대충 사랑한 적도 없어요. 비록 나와 당신은 함께 하지 못할지라도 나는 단 한 번도 당신을 덜 사랑하고 덜 좋아한 적 없어요. 내 전부거든요, 당신이.
그런 당신이 하루하루 저물어가요. 해가 길어졌거든요.. 칠흑같이 어두워져야 당신을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데 해가 길어졌어요.
나 너무 질척거리죠??ㅜㅠ 사람이 사람을 좋아할 적에 이렇게 구질구질해지는지 몰랐어요.. 사랑, 참 어려운 거 같아요. 머리로는 당신을 놓아야 한다는 걸, 당신을 잊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내 뜻대로 되질 않아요.. 생각보다 쉽지가 않아요.
애써 당신을 밀어내고 싶지 않은 나를 이해하지 마세요.
가만히 있어도 아픈 계절 속에 나만 갇혀있는 느낌이에요. 이제는 사라지고 싶어요. 흔적도 없이 말이에요. 그러려면 그전에 당신이 날 좀 사랑해 주세요.. 흔적도 없이 사라질 테니 한 번은 날 사랑하셔야죠. 미련이 남지 않도록 말이에요. 이토록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데, 당신은 내게 줄 수 있는 마음이 동정뿐이라니.. 내게 너무 가혹하세요. 도저히 사랑이 아니 되겠다면, 그런 척이라도 해주세요. 철저하게 완벽하게 말이에요. 그래야 그걸로 만족하고 더 이상 당신을 보러 가지 않을 거 같아요. 아무리 내가 귀찮고 싫어도 내게는 절대 티 내시면 안 되세요.. 당신 없인 못 살 거 같은 나에게 그런 티까지 내신다면, 나더러 죽으라고 하는 거랑 같은 거니까요..
빼곡한 마음으로 당신을 좋아하고 있어요. 다른 누군가 그 틈을 비집고 들을 수 없을 만큼 말이에요..

당신은 이미 다 알죠? 내가 당신을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 지를요..  그러니 구태여 당신에게는 사랑하고 있지 않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 않을래요. 목소리 듣고 너무 반가웠거든요..  회사 탕비실에서 따뜻한 핫초코 마시다가 당신 목소리에 벌떡 그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어요. 너무 반갑고 좋아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어요.. 모르셨지요? 반가운 티 안 내려고 거기에 신경 쓰는 바람에 퉁명스럽게 내 용건만 이야기하고 끊어버렸어요.. 통화가 종료되고 나서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요. 식사 맛있게 하시라고, 별일 없으시냐고.. 안부인사라도 할 걸 그랬다면서요.. 그래서 이제는 아닌 척 안 하려고요.. 내가 당신을 앞으로 몇 번을 볼런지도 모르는데, 굳이 내 마음을 숨기면서 까진.. 이제 그러긴 싫어요. 무척 사랑하고 있는 티까지는 용기가 없어서 못 내더라도, 싫어하는 티는 일부러 안 내려고요.. 당신을 무척 좋아하고 있어요. 아니, 근데!!!! 왜 바쁘세요!!!!!!!!!!!!!!! 바쁘지 마요!!!!!
바쁜 당신 때문에 당신을 볼 날을 더 기다려야 하잖아요!!! 개썅. 하루에도 열두 번도 바뀌는 내 감정들이 전부 당신을 사랑하는 거 맞는 거죠? 원래 다 이런 거죠? 나만 소심하고 지질해서 이런 거 아닌 거죠?
당신이 미치도록 좋아요. 당신도 내 마음과 같아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잘 자요, 내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