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2-3 이유있는

호호아줌마v 2025. 5. 6. 19:24



결혼생활은 하루하루가 실전이다.
연습이나 실습 따위 없이 시작되며, 드라마 속처럼 배경음악도 없고, 특별한 스토리도 없다. 편집도 없으며, 예고편도 없다. 그저 주어진 하루를 살면서 겪게 되고, 살면 또 살아지는 이유들과 살아내야 하는 삶의 연속. 그 속에서 나름의 행복과 각자의 방식에 따라 살아낸다.  
한 사람은 어지럽히고, 한 사람은 치운다.
한 사람은 결과를 중시하고, 한 사람은 감정을 중시한다.
그게 우리 부부다. 한마디로 말해 맞지 않는다.
아주 사소한 것에 서로 부딪히고 상처를 내다가도, 어느 날은 또 별일 아닌 일에 마음이 맞아 서로 헤헤거리고 웃는다.
살다 보니, 이제는 어질러 있으면 말없이 치우는 나를 발견한다. 함께 사는 건 이런 거다. 설명도 없고 정답도 없다. 그냥 같이 하루를 살아낼 뿐. 서로의 반반씩 닮은 아이들은 가족이라는 끈끈한 공동체를 만들어주고, 아이들을 통해 또 다른 사랑을 배우며 산다.
아마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을 것이다.


"엄마!! 조금 더! 조금만 더 위로!!"
"마음대로 잘 안.. 돼ㅠㅠ 이얍!!"


첫째 아이가 학원 마친 후,  둘째 아이 유치원 차량이 오기 전 짬나는 시간이었다. 이날은 날이 좋아 집 앞 공원에서 배드민턴 쳤던 날이다. 한낮의 볕이 뜨거운 탓에 그늘나무 아래에서 쳤던 게 화근일 줄이야.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쳤던 시간이 늘어나면서 이제 서로 주고받기가 가능해졌다. 라켓 정중앙에 셔틀콕이 정확히 부딪히는 소리가 매우 기분 좋을 때였다. 그만, 울창한 나무 사이로 셔틀콕이 들어가 버렸다. 이전에도 몇 번 걸린 적이 있었으나, 바람이 불어 떨어지곤 했었는데, 이번엔 아니었다. 나뭇잎 사이 단단히 걸린 모양이었다. 라켓을 들고 까치발을 들어도 당연히 닿지 않을 높이였고, 다 먹은 생수병을 던져 걸린 셔틀콕을 빼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계속 시도한 탓에 목과 어깨가 아팠다. 결국 아이에게 아빠가 퇴근하고 오면 그때 해결하자고 했지만, 아이는 썩 내키지 않아 했다.

"이제 그만 가자. 동생 차 올 때 다 됐어"
"저 공.... 나랑 제일 잘 맞는 공인데..."
"어쩔 수 없잖아. 아빠 퇴근하면 그때 다시 오자. 약속할게^^"



텀블러를 아이에게 건네며 마시라는 제스처를 취했고, 아이는 건네받고서 벤치에 털썩 앉아 기분이 언짢은 듯 고개를 들어 마셨다. 이내 갑자기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리고, 마시던 텀블러를 내게 주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는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다.

"아저씨!!!!!!!!!!"

아저씨라고 부르며 달려간 곳에는 그 아기 아빠가 있었다. 그쪽도 둘째 하원 시간에 맞춰 오는 모양이었다.

"어~ 안녕^^ 아저씨 기다린 거야?"
"네!  아저씨 도와주세요!!"
"무슨 일이야? 안녕하세요 ^^ 며칠 안보이시더니....."
"아저씨 배드민턴 공이 걸렸어요 저 위에!"
"어디? 아저씨 눈에는 잘 안보... 보인다!!! 알았어 저걸 꺼내달라는 거지?"
"네!!!!"
"조금 있으면 아빠 퇴근하는데.....  번거롭게 해서 죄송해요"
"아, 아니에요"


그는 주위를 살피고는 뭉퉁한 나뭇가지 하나를 주웠다. 그리고 단 한 번의 시도만에 아이 손에 쥐어주었다.

"자~~"
"아저씨 최고!!!!"


아이는 셔틀콕을 받고 너무 행복해했다. 아이의 환한 미소에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너 웃을 때 엄마랑 똑같네? 보조개도 들어가고?^^"
"어? 아저씨도 엄마 보조개 봤어요??"
"당연하지. 자주 봤는데?"
"이상하다? 엄마는 엄청 세게 웃어야 보여요!"
"알아. 아저씨는 엄청 많이 봤는걸?"
"언제요?"
"너희랑 공원에서 술래잡기할 때도 봤고, 놀이터에서 놀 때도 등교할 때도 그렇게 웃던데?"
"맞아요! 나 엄마 닮았거든요^^ 다들 엄마 닮았데요. 엄마도 보조개 4개고 나도 4개예요. 그런데 동생은 없어요"
"이제 그만 가자. 유치원 차 오겠다"
"응!"

그렇게 셋이 아파트로 향하는 길이었다.

"며칠 안보이시던데, 여행 가셨나 봐요?"
"여행 안 갔어요! 엄마가 아파서 입원했었어요!"
"어디 편찮으세요!?"
"아니, 아니에요. 괜찮아요^^"
"엄마가 밥을 엄청 많이 먹는 사람인데, 살이 빠져ㅅ..."
"컨디션이 안 좋았는데 좀  무리했나 봐요.."


아이의 말을 잘랐다. 그렇게 자세히 알려줄 만큼 가깝지 않으므로.

"지금은 괜찮으신 거죠?"
"네네^^ 건강해요"
"그래서 살이 좀 찌셨구나. 너무 말랐었어요"
"아니에요. 안 말랐어요"
"우리 엄마 뱃살 출렁출럴ㅎ..."
"빨리 가자! 동생 기다리겠다!"


또다시 아이 말을 잘랐다.

"셔틀콕 감사해요. 먼저 가보겠습니다, 어서 가장!!!!"

아이의 손을 잡고 아기 아빠 옆을 지나쳐갔다. 타인에 대한 경계였다.

"어머니, 차량에서 또 잠이 들었어요"
"네, 제 등에 업혀주세요^^"


그렇게 두 아이를 데리고 빠르게 집으로 향했다. 아기 아빠에게는 고개만 끄덕여 인사를 했고, 그도 내게 들어가세요라고 말했다. 첫째 아이와는 서로 손을 흔들었지만, 나는 모르는 척했다.



#헤픈 남자


아이들 하원 시간이 같아, 그와 나는 하루에 두 번은 꼭 마주쳤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마침 원플러스 원 행사를 해서요. 다 못먹을 같아서 그런데 괜찮으면 드시겠어요?"
"안 주셔도 되는데... 주시는 거니까 감사히 받을게요"
"뭘요. 이웃끼리 나누면 좋죠"


그는 언제나 사람 좋은 얼굴로 뭔가를 주었다. 나는 하원하는 아이와 그가 준 과일을 받아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냉장고에 과일을 넣어두고 중얼거렸다.

'왜 자꾸 주는 거야....'

그냥 덤이라 아까워 준다기에는 자꾸만 의문이 들었다. 저 남자는 무슨 생각인 걸까? 도저히 혼자서는 해결이 되지 않아 사무실 언니에게 조언을 구하기로 했다. 다음날 출근해서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물어볼 게 있는데. 누가 자꾸 뭘 줘ㅠㅠ"
"응?? 무슨 말이야? 누가 뭘 주는데?"
"얘들 과자, 과일, 얘들 용품"
"너 마트 직원이랑 썸 타?!"


내 딴에는 진지하게 물었는데 언니는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덧붙였다.

"근데 주는 게 뭐 그래? 기왕이면 좀 그럴싸한 걸 주던지"
"아! 언니!!! 농담 아니라고"
"알았어 알았어. 누군데?"
"이웃이야. 같은 동도 아니고, 다른 동이야"
"근데 어찌 알아?"
"얘들 등하원 하는 시간이 같아서 평일마다 두 번씩 보거든"
"아.. 육아동지 같은 이웃??"
"응 그렇긴 한데. 저번에는 쓰레기도 대신 버려줬어"
"쓰레기까지? 동도 다르다면서? 어떻게?"
"아파트 필로티에 헬스장이랑 골프장 있거든? 거기 이용하고 내려가는 엘베에서 나랑 만났어. 그때 쓰레기봉투 들고 가는 날 보고 대신 버려줬어.."
"그 남자 돌싱이야?"
"아니!! 아기 엄마 있고, 나랑도 인사하고 이야기도 몇 번 나눈 사이야"
"그럼 똑 부러지게 물어봐야지"
"내가? 나 못해 언니ㅜㅠ"
"그럼 내가 대신해 주리??"
"무서워..ㅠㅠ"
"어떤 사람인 거 같아??"


언니의 물음에 곰곰이 생각해 봤다.
결혼한 사람 특유의 안정감 있는 분위기 때문에 여유가 있고, 인상이 선한 사람이다. 법 없이도 살 사람처럼. 아이들과 아내에게 다정하고 말도 예쁘게 하는 남자였다.

"그냥 아기 아빠야. 잘 모르겠어"

언니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깔끔하게 결론을 내려줬다.

"확실해. 이건 관심이야. 자기한테 호감 있어"
"나 아줌만데?"
"뭐 어떻게 해보자는 게 아니잖아. 그냥 관심이 있는 거라고.
그리고 사람 일 모르는 거다?"
"에이..."
"그 아기 아빠가 다음번에 또 주면 그때 꼭 물어봐"
"물어보면 뭐가 달라져?"
"아니??"


조언을 구하고자 한 이야기는 별 시답지 않게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나는 다음번에 아기 아빠가 또 과일을 나눠준 날, 나는 물어보았다.

"저기... 이번만 받고 그만 받을게요. 부담스러워서요... 그동안 감사했어요. 이거 받으세요. 매번 받기만 해서 죄송해서 안 되겠어요"

참송이버섯상자를 내밀었다. 그는 한사코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지만, 나는 기어이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 아이를 들쳐업고 집으로 갔다. 그동안 내게 주었던 이유를 듣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게 무슨 이유든간에 듣지 않는 편이 나을 듯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나서 한동안은 그를 피해 다녔지만, 항상 마주쳤다. 다음에 조금 더 편해지면 물어봐야겠다. 그때 준 이유에 대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