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2-1 출근길

호호아줌마v 2025. 4. 25. 09:19



도란도란 젓가락 소리로 스며드는 정겨운 말소리, 평소와 같은 식사시간이었다. 하루 있었던 일상을 공유하는 이야기 속에서 소소하게 피어나는 행복은 평온과 화목한 분위기를 선사하는 저녁식사 시간, 그 이상이 이었다. 까르르 웃는 아이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와 그걸 또 흉내 내는 아이로 인해 단순히 끼니를 해결하고자 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빠르게 오늘 하루의 고단함을 털어버리고, 행복으로 빠르게 채우기 시작했다. 아이의 한마디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엄마, 아침에 아저씨가 엄마 나이를 물어봐서 알려줬어"

나는 '왜?'라고 물었고, 남편은 '어떤 아저씨?'라고 물었다.
아이 입에서 나온 아저씨가 누구인지 짐작이 갔다.

"엄마 말에 먼저 대답해 줄게. 왜 물어봤는지 나야 모르지. 그래서 38살이라고 이야기해 줬어. 이제 됐지? 다음은 아빠차례! 우리 아파트에 사는 아저씨, 아빠가 나 유치원 차탈 때마다 인사하던 아저씨 있잖아. 화 안 내는 아저씨"

"??"


나를 보며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남편을 위해 덧붙여 설명했다.

"얘들 등하원에서 맨날 만났던 인상 선하게 생긴 아기 아빠 있잖아. 그.. 부부, 엄청 사람 좋게 생겼다면서 전에 한번 이야기했었잖아. 아들 둘 부부"
"아아~ 어어. 근데 왜 니 나이를 물어봐?"
"몰라?"

그렇게 식사 자리는 끝이 났고, 분주히 식탁을 정리했다. 머릿속에는 내 나이를 궁금해하는 이유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6년 전 겨울,
나는 임신한 채 새 아파트로 이사를 왔고, 이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조산으로 출산을 했다. 육아휴직을 다 쓴 남편은 출근을 해야 했고, 친정엄마에게 산후조리를 길게 부탁하는 건 딸이지만  죄스러웠다. 결국 두 아이를 독박 육아를 해야 했다. 젖먹이 아이와 아직은 형아가 되기에는 어린 5살. 누적된 피로와 풀리지 않는 피로로 사랑을 줘야 하는 자리에서 그러하지 못했다. 점점 나는 망가지고 있었다.  결국 어린이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외출 후엔 곧장 집에 들어가길 싫어하는 아이는 꼭 아파트 놀이터를 들렀다. 그때 그 아기 아빠를 처음 만났다. 잔뜩 젖 먹고 곤히 자는 아이를 아기띠로 안고, 첫째와 놀아주며 간간히 마주쳤다. 자주 마주친 탓에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트에서, 놀이터에서, 아파트에서, 강변에서 마주치면 서로 눈을 마주치고 목례까지 하는 사이가 되었고, 그 남자의 아들과 나이가 같아 놀이터에서 만나면 곧 잘 어울려 놀았다. 그렇게 서로 안면을 텄다. 그의 아내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출산을 했다. 그리고 곧이어 그의 아내와도 여러 번 만났고, 같이 인사하게 되는 사이가 되었다. 둘이 참 잘 어울리는 부부였다. 우리 부부는 톰과 제리같이 키타키타가 장르라면, 그쪽 부부는 조신하고 점잖은 부부였다.
어느 날, 아기 아빠는 아내가 낮잠을 잘 수 있게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했으며, 나는 그때 살기 위해 유모차를 끌고 강변을 걷고 또 걸었다. 가끔 마주치며 같이 유모차를 끌기도 했지만, 그땐 마음의 여유가 없어 인사도 제대로 받아주지 못했다. 그리고  모유수유 중이라 배가 자주 고픈 아이로 산책을 같이 마무리하지 못했었다.
첫째가 같은 나이였지만, 한 번도 같은 기관에 다니진 않았다. 그럼에도 등원차량 시간은 겹쳤고, 등하원마다 마주치면서 하루에 2번은 얼굴을 보게 되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고,  둘째가 어린이집에 가면서 나는 직장을 다시 나가게 되었을 때쯤에 목례와 인사말이 아닌 다른 말로 인사를 건네었다.

"출근하시나 봐요?"
"네^^"
"첫 출근 응원하겠습니다. 파이팅 하세요!!^^"
"풉 ㅎ 감사합니다 ^^"


양손을 가볍게 주먹을 쥔 채 파이팅을 외치는 남자에게 나도 티 없이 맑게 웃으며 감사함을 전했다. 흘러간 시간만큼 조금은, 아주 조금은 그에게서 경계가 풀어진 듯하다. 그리고 그때쯤 죽어가던 나에게도 봄이 찾아왔으니 웃을 수 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부터 매일 등하원은 내 몫이 아니었고, 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5일 중 4일은 봤던 사이에서 점점 마주치는 일이 잦아들었다. 그러다 첫째가 같은 초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매일 아침을 함께 한다. 공교롭게도 둘째가 같은 기관에 다니지 않지만 차량시간이 또 겹쳤다. 얼마 전에는 출근 준비와 아이들 챙기느라 차를 놓칠 뻔한 적도 있었는데, 아기 아빠가 차량을 잡아준 적도 있었다. 그렇게 감사한 일이 하나 둘 쌓이면서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둘째가 등원차량을 타고 가면, 각자 첫째 손을 잡고 학교로 걸어간다. 그렇게 넷이 되어 함께 가는 날이 잦아졌다. 아이들과  교문 앞에서 헤어지고 나면 그다음이 문제다. 다시 집 앞에서 버스를 타야 하는 나와 늘 집으로 돌아가는 아기 아빠 때문이다. 같이 학교까지 와서 따로 가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또 어깨를 나란히 걸어 아파트까지 향하기엔 좀 그렇다. 불편하다.  그럼에도 그는 나란히 걸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날리는 날 걸음을 멈출 때에도, 목련이 예쁘게 핀 나무를 보고 있을 때도, 동백을 보고 있을 때에도 그는 내 걸음에 함께 맞춰주었다. 불편했지만, 그의 행동이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 사람은 쓸데없이 말을 가벼이 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내게 질문이나 자기 일상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점잖은 사람이었다. 나이가 많은 건지, 젊은 건지 알 수 없으나 사람이 순해 보였다.

"오늘도 수고하세요^^"
"네, 안온한 하루 보내세요^^"


아파트 앞 신호등에서 매번 같은 인사로 인사와 목례로 헤어졌다. 그러다 얼마 전 등교 후 집에 돌아가는 길에 그가 말을 걸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무슨 일 하시는지 여쭤봐도...?"
"아... 저, 회계일 하고 있어요."
"의외네요"
"회계 일이 저랑 안 어울리나 봐요?^^"
"아뇨. 그런 뜻이 아니라 생각지도 못한 직업이라..."
"제가 어떤 일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셨는데요?"
"패션이나 디자인 쪽으로 일하실 거라 생각했었어요"
"아..... 왜죠?"
"말투와 행동에서 창의적인 일 할 거라 예상했어요. 그리고 옷도 잘 입으시는 거 같고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저 사무실에서 꼰대라는 소리 들어요^^"
"정말요? ^^ 꼰대와는 거리가 멀게 생겼는데??^^"
"그죠!!!!??!!!^^  감사해요^^"


시간이 지나면서 같이 가는 길도 차츰차츰 어색하지 않게 되어갔고, 가벼운 농담까지 하는 관계가 되어가고 있었다.

오늘 아침도 속된 말로 '개'바빴다. 워킹맘들은 아침마다 전쟁이다. 먹이랴 씻기랴 입히랴... 둘째는 겨우 유치원 차량에 태워 등원했지만, 첫째 물통을 깜빡했다. 아이 손을 잡고 같이 집에 들러 챙겨 나왔지만, 시간이 빠듯했다. 버스를 놓칠 거 같았다. 그렇게 아침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아기 아빠가 멀리서 보였고, 스쳐 지나가면서 뭔가 내게 말한 듯싶었지만 들리지 않았다. 내게 할 말이 인사밖에 더 있겠나 싶어 달리면서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교문 앞에서 빠빠이를 외치고 왔던 길을 다시 내달렸다. 앞에 아기 아빠가 또 보였다.

"천천히 오세요~ 먼저 갑니다"
"저기, 아기 엄마!!"


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았다.

"그.. 치마가 너무 돌아갔고....  "

말끝을 흐렸다. 아침 내내 달렸더니 치마를 입고 있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달리면서 올라간 치마를 손끝으로 내리면서 당황한 기색 없이 말했다.

"괜찮아요^^안에 바지 입었어요!"

사실, 입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더 민망할 듯하여..

"아.. 조심히 다녀와요"
"네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지만, 다시 우리는 신호등 앞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섰다. 애꿎은 명찰만 만지작 거렸다.

"초록불인데 안 건너세요?"
"아, 가야죠^^ 저 지각이에요^^ 먼저 갈게요"
"네 오후에 봬요"


숨도 고르지 않고, 버스 정류장까지 내달렸다. 아기 아빠가 보고 있을 것이므로.


아기 아빠는 왜 나이가 궁금했을까.



《이 소설은 정규 소설이 아니므로,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는 서술자의 시점이 일정하지 않습니다.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