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1-278 그리움 끝자락

#벚꽃이 져도 아쉬워 말아요
벚꽃이 질 즈음이면, 어김없이 철쭉이 핍니다.
하얀 벚꽃과 함께 봄을 시작하더니 벚꽃이 지고, 흐드러진 연분홍빛 철쭉이 또 다른 봄을 데려와요. 철쭉 사이를 걷다 보면, 그 길을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어느새 핑크빛 물결이 일렁입니다. 그 틈엔가 나는 당신을 그리워합니다. 철쭉을 보고 당신도 나를 떠올리기를...
보고 싶어요, 너무. 당신을 보러 가고 싶습니다.
나는요, 사랑이 끝난 자리에서 여전히 머물러있어요. 사랑이 끝났다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아요. 사실은요,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몰라요. 당신은 너무 쉽게 내게서 떠나려 하지만, 나는 그런 당신을 놓을 수가 없어요. 당신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 없이도 퍽 잘 지내겠죠. 그렇죠?
당신과 나와 같은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왜 나만 이렇게 무너져 내릴까요. 왜 나만 여기에 머물러 있는 걸까요. 당신을 보러 가면요, 더없이 말갛게 웃는 당신을 보면 그 모습에 날 더 무너지게 할 거 같아요. 왜 이 아픔이 나의 몫이어야 하냐면서요.. 나는요, 아직도 당신의 목소리와 당신이 내게 했던 말, 표정, 당신의 모습이 맴돌아요. 책에서 읽었는데요, 사랑하는 이를 쉽게 잊지 못하는 건, 그건 내가 의지가 약하거나 당신이 특별하다기보다는 내 마음이 진심이었기 때문이래요. 그게 맞는 거 같아요. 당신에게 진심이 아니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거든요. 당신에게 향한 고백도 마찬가지예요. 내 사랑에 거짓은 결코 없었으니까요. 오늘도 나는 어김없이 사랑이 끝난 자리에서 당신을 기다립니다.

당신은 어떤 계절을 가장 사랑하는지 궁금해요. 나는 꽃을 그토록 좋아하면서도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낙엽도 좋아하고요. 세상을 덮어버리는 새하얀 눈도 좋아해요. 그중에 딱 한 계절만 꼽자면요, 뭐니 뭐니 해도 나는, 장마도 있고, 소나기도 잦은 여름을 제일 좋아해요. 그렇다고 해서 다른 계절을 미워하는 것은 아녜요. 계절보다 당신이 더 좋다는 이야기를 또 이렇게 빙빙 돌려하나 봅니다.
당신을 만나고 헤어지고, 당신을 보러 갔다 다시 돌아오고... 쳇바퀴 돌 듯 빙글빙글 돌며 영영 내려오지 말죠, 우리. 열두 시 땡 하면 마법이 풀려 황금마차는 호박이 되고, 화려했던 드레스는 허름한 옷이 되고 마는 신데렐라처럼 당신과의 시간을 꿈같은 마법이라 여길래요. 현실을 나 몰라라 하겠다는 말이 아녜요. 열두 시가 되면, 원하든 원치않든 현실로 돌아가야 하니깐요. 그 짧은 시간에 잠시라도 신데렐라가 되고 싶다는 말이에요. 화려한 드레스도, 유리 구두도 나는 필요 없어요. 당신이 내 옆에 있어준다면, 그것이 바로 내게는 마법 같으니까요. 깨지 않는 꿈같은 현실에서 살고 싶어요. 어쩌면요, 당신을 자꾸 기다리고 싶어서 기다릴 이유를 내가 만들어 두고 있는지도 몰라요. 꽃이 피고 지던 계절에 당신에게 온통 쏟아붓습니다. 당신을 향한 그리움과 사랑은 계절 끝에 당신에게 가닿기를 바라는 것, 그뿐입니다.

#여기서 만큼은 조금 재미있게 웃어보자고요^^
겨울잠에서 하나둘씩 깨어나는 뱀들이 강변에 많아졌어요. 볕이 좋아 몸을 말리러 나왔다가 인기척에 도망가기도 하고요. 달리다가 뱀과 마주쳤는데요, 뱀을 보고 무서워할 당신이 문득 떠올라 한참을 내 입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어요. 풉, 어른 남자가 뱀을 무서워한다니요. 걱정 말아요. 뱀 나타나면 언제든 연락하세요. 소닉처럼 한달음에 달려가, 쥐불놀이 하 듯 꼬리 잡고 어지럽게 혼내주고 강에 던져버릴 테니까요. 당신을 놀래게 한 벌로 내가 혼내주겠다는 거예요. 나 쫌 멋있지 않나요. 든든하죠?^^ 내가 당신을 지켜줄게요.

강변에는 몸 말리겠다고 바위 위에 올라온 거북이 가족들도 쉽게 볼 수 있어요. 자세히 보시면 아시겠지만, 쟤는 생태계교란종 붉은 귀거북이예요. 포획하고 퇴치해야 되는 종이 맞지만요, 옹기종기 가족끼리 바위에 올라가 등을 말리고 있는 모습이 왜 그리 부러울까요. 당신과 함께 지루한 일상을 함께 보내고 싶다랄까요. 가령, 자는 당신 옆에서 얼굴에 있는 점을 센다던지, 무릎 베개하고 귀를 파준다던지, 책을 읽어준다던지.. 그런 사소하고 소소하고 무료한 일들을 당신과 함께 하고 싶어요. 매번 나는 많은 걸 바라지 않는 데 이뤄지지 않더라고요...

당신은 아주 좋은 계절에 태어났어요. 작년 이맘때쯤 당신이 생일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정확하지 않지만, 계절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요. 분명 봄이었거든요. 그때 당신에게 생일이라는 말을 듣고, 날씨도 적당히 따뜻하고 사랑을 하기에 좋은 날에 태어난 당신이 태어나기에 아주 적당하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스며드는 봄에, 당신의 다정다감한 온기를 가진 게 아닌가 해서 동경하며, 선망했었어요. 하여, 당신이 태어난 봄도 너무 좋다고요. 그 말이 하고 싶을 뿐이에요. 그뿐이에요.
흐드러진 봄에 자꾸만 당신에게 가고 싶은 이유인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