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일상기록

급성 치수염으로 응급실

호호아줌마v 2025. 4. 15. 03:57


"양치하다 칫솔이 잇몸을 찔렀는지 영 불편하고 아파"

며칠 전 남편이 양치하고 나오며 한마디 했다. 이 일이 나중에 얼마나 어마무시한 일이 생기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 후로 한두 차례 불편하다고는 했지만,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이틀 후 일요일 아침, 남편이 야간 근무 마치고 퇴근하는데 안색이 안 좋아 보였다.



"오빠, 어디 아파?"
"이가 아픈 건지, 목이 아픈 건지 아파.."

야간에 하는 약국에 가서 약을 사서 먹었다고 했다. 웬만하면 병원을 가거나 약을 직접 사는 일이 거의 없는 남편이 직접 사러 갈 정도면 많이 아픈가 보다 생각했다. 일요일이기도 하고, 진통제를 먹었으니 괜찮아질 줄 알았다. 밥을 거르지 않는 사람이 먹지 않겠다고 말했다. 일요일이 치과 진료를 볼 수 없을 거라 단정 짓고 있다가 동네에 주말에도 진료하는 치과가 있었고, 치과에 데려다주었다. 아이들도 함께 있어 따라가 주진 못했다. 대기가 많아 2시간을 기다려야 된다고 연락을 받았다. 그 두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진통제를 또 먹었다고 했다.

"데릴러와 줘.."
"벌써 진료가 끝났어?"
"진료 못 봤어"
"왜?"

진통제를 먹은 탓에 그 효과인지 통증이 줄었고, 치료 전 진통제 복용하면 진료를 볼 수 없다고 내일 오후 2시에 다시 오라고 했단다. 그렇게 엑스레이만 찍고 치과 선생님을 만나지 못하고 나왔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오전에 자야 하는데 통증으로 자지 못했고, 우린 그렇게 오후 7시에 시댁과 오리백숙 먹으러 약속 장소에 갔다. 식당에서도 시원한 생수만 입에 머금고 있었다. 차가운 물을 머금으면 통증이 잦아든다고 말이다. 그때 나는 치통이구나 싶었다. 오리백숙은 손도 대지 않고 식은땀만 흘리는 남편이 안타까웠다. 응급실 가서 진통제를 맞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그렇게 혼자 병원을 보냈다. 나는 아이들도 있고, 시댁 식구도 있어서 또 같이 가지 못했다. 다시 내게 전화가 왔다.

"안 받아준데"
"또 왜"
"치과는 응급도 없고, 진료 볼 수 없데. 경대 응급실가래"
"지금 어딘데?"
"*일병원"
"경대 갔다가 전화 줘"

또다시 전화가 왔다. 진료를 볼 수 없다고... 119에 전화를 해서 진통제 주사 맞을 수 있는 곳을 찾아달라고 전화하라고 했다. 곧이어 다시 남편은 모두 안된다라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남편은 다시 식당으로 왔고, 안색은 더 좋지 않았다. 여태 살면서 이렇게 아파하는 모습이 낯설었고, 무서웠다.

"오빠, 많이 아파?"
"응"
"집에 가자, 얼음 찜질하고 일단 쉬자"

결혼 생활 9년 만에 먼저 자리를 일어선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오빠가 많이 아파서 안 되겠어요.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통증에 무디고 무딘 80킬로 넘는 남자가 식은땀을 흘리며 아파했다. 치아뿐만 아니라 목과 귀까지 통증의 범위가 커졌고, 달리 얼음찜질과 가글을 머금어 통증을 잠시 완화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움직이기 싫어하는 남편이 아파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응급실에 전화를 돌렸고, 차가운 물이나 얼음을 가져다 대면 통증이 완화되는 걸 보니 치통인 듯싶다.  얼마 전 양치하다 칫솔이 잇몸을 찔러 통증이 있었다고 자세히 설명을 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치과응급은 봐줄 담당의사도 없고, 진통제를 마음대로 놔줄 수 없다고 했다. 오기가 생겼다. *일 병원에 전화했고, 치통이 맞으면 진통제를 놔줄 수 있다고 했다. 통증에  턱을 잡고 끙끙 앓는 남편이 무지막지하게 아파 보였다. 해서 구급차가 와서 데려가기엔 남편이 더 기다려야 하기에,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카시트를 하고 남편을 태우고 먼저 친정에 들렀다. 친정부모님께 지금 출발하니, 잠시 아이들 좀 봐달라고 말씀드렸더니 미리 나와계셨다. 곧장 *일병원으로 갔다. 남편을 내려주고 주차하고 왔는데도 여전히 밖에 있었다....
응급실 진료순서는 응급순이었고, 진료조차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파서 말도 못 했을 터이고... 눈물이 났다. 왜 눈물이 났는지는 모르겠다.  팔에 눈물을 힘 있게 닦고, 상황을 말했다. 턱과 목과 귀가 부어 염증이 목까지 차면 구멍을 내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했다. 우선 ct를 찍자고 했다. 수액만 달아주었다.

"극심한 통증이 14시간째예요. 진통제는 더 이상 듣지도 않고요. 진통제 투여 해주세요"
"검사해 보고 투여해 드릴게요"
"지금, 놔주세요. ct 찍는데 문제없잖습니까"
"잠시만요"
"네, 놔드릴게요"
"비급여든 뭐든 상관없으니 제일 빠르게 진통 효과 볼 수 있는 걸로 놔주세요"
"이쪽으로... 동의서 서명 해주세요"

동의서를 작성하고 남자 간호사가 물었다.

"혹시, 환자분과 어떤 관계세요?"
"아내요"
"아.. 네"



남편이 ct를 찍는 중에 전화가 계속 왔다.

"엄마ㅠㅠㅠㅠ 보고 싶어ㅜㅜㅜㅜㅜ"
"엄마! 언제 와? 아빠는 괜찮아졌어?"

울기만 하는 둘째와 아빠를 걱정하는 첫째.

"코 넨네할 시간이 한참 지났어. 할머니 할아버지랑 자고 있어. 금방 아빠 데려갈게~"

ct촬영이 끝나고, 엑스레이도 찍어야 한다며 다른 간호사가 설명해 주었고, 다시 내게 물었다.

"환자분 여자친구세요?"
"아뇨, 아내입니다"

ct촬영 시 정맥혈관에 사용하는 조영제로 남편이 두드러기가 심하게 올라왔다. 덜컥 무서웠다... 딱딱한 돌멩이 같은 것들이 얼굴과 몸에 올라왔다. 병원에 이야기했고, 알레르기 약물을 수액과 함께 들어가게 해 주었다.

"안 추워?"
"이제 괜찮아?ㅠㅠㅠㅠ"
"왜 울어ㅡㅡ"

진통제 덕분인지 안색이 조금은 돌아왔고, 일어나 앉더니 외투를 벗겨달라고 했다. 그러곤 나보고 입으라고 했다. 갑자기 다시 찾아온 겨울이었고, 나는 바지만 청바지로 갈아입고 상의는 잠옷이었다... 몰랐었다.



그제야 남편 눈에 내가 보였다. 이제 진짜 살만한가 보다.

"내 보호자가 왜 이래 ㅋㅋㅋㅋ"
"내가 왜"
"웃겨서 ㅋㅋㅋ네가 내 보호자라는 게 ㅋㅋㅋ"
"죽고 싶어? 지금 웃음이 나와?"




생각해 보니 웃겼다. 남편이 응급실에 온 적이 몇 번 있지만 나와 함께 온 적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남편보다 내가 응급실에 실려온 일이 많았기도 하고, 누군가의 보호자로 앉아있는 내가 나를 봐도 웃겼다. 그렇게 나는 또 하나를 해결했다.

"보호자분 설명 들으러 오세요"
"네"

다른 문제는 없어 보이고, 치통이 맞는 거 같다며 치과 진료를 보라고 했다. 그러고 진통제 투여 중이니 내일 아침까지는 괜찮을 거다, 혹시나 몰라 처방전 드릴 테니 *텀약국(야간약국)에서 약을 타서 통증이 있으면 먹으라고 했다.

"환자분이랑 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아내예요"

남편과의 관계를 왜 자꾸 묻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3번은 들었다. 서류상에 관계와 이름 적을 때도 '아내'라고 적었는데 말이다.

"오빠, 원래 응급실에 따라온 보호자한테 어떤 관계냐고 자꾸 물어?"
"?? 왜 작게 말해??"
"그냥...ㅋㅋㅋㅋ"
"아닐걸. 왜?"
"자꾸 오빠랑 무슨 관계냐고 물어봐서.."
"ㅋㅋㅋㅋㅋㅋ네가 내 보호자라는 게 다른 사람 눈에도 어설프고 웃기겠지 ㅋㅋㅋㅋㅋ"
"씨, 너 살만하지?? 그지? 고만 웃어. 자꾸 웃으면 진통제 안 들어가게 한다"

하여, 수액과 진통제 투여가 끝나고 응급실을 나왔다. 약국에 들러 약을 사고, 친정집에서 자고 있는 첫째는 남편이, 둘째는 내가 업고 차에 태워서 집으로 갔다. 뒷날 아침, 집 앞 *트럴치과에 갔더니 급성 치수염이라고 했다. 출산과 맞먹는 고통이라고... 치아 안 중앙에 신경 치수라 불리는 조직이 있는데, 거기에 염증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신경치료를 3번 정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어제 한번 받고 통증이 많이 줄었고, 살만 하다고 했다.

치통이 이렇게나 무서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