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1-271 봄, 그 자체가 문장이다

#다정하고 낭만이 가득하세요
그리움은 끝이 없는 길 위를 걷는 기분이에요. 어디까지 걸어야 하는지, 언제쯤 멈춰 서야 하는지, 얼마나 가야 도착하는지 모른 채 계속 걷고 있어요. 끝없이 당신에게 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당신께 도착하고 싶어요.. 당신이 나 좀 마중 나와주세요. 그만 걷도록 말이에요.
발도 아프고, 목도 마르고, 힘들어요. 그런데 멈추질 못하겠어요. 조금만 더 가면 꼭 당신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그럴 거 같아서 오늘도 나는 끝이 없는 길을 헤맵니다.
한 걸음 가다 당신인 듯해서 멈추고, 당신이 아님에 뒷걸음치고.... 당신만을 생각하다 이렇게 넘어진대도 하나도 아프지 않아요. 말했잖아요, 당신을 몰래 사랑하는 주제에 뻔뻔하면서도 주눅 들지 않는 내 베짱이 좋다고요. 내게 이 베짱이라도 없었음 어쩔뻔했는지 몰라요...

반쯤 벌어진 입술 사이,
'나 좀 사랑해 줘요'라는 말을 힘겹게 삼키자
마치 날카로운 가시를 삼킨 듯
가슴 이곳저곳에 상처를 내며 아려온다.
잡으려 해도 쥐어지지 않는 헛헛함과
나를 향한 마음이 사랑이 아니라는 섭섭함.
양손에 헛헛함과 섭섭함의 가시를 끌어안고 돌아선다.
붉은빛으로 타들어가던 태양과
양손에 붉은 핏자국은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빛 사랑이
벚꽃 위 피의 잔향으로 물든다.
그리움을 하얗게 접어 꽃송이에 감추고
두 손 모아 하는 기도에
비로소 새싹이 돋아난다.
희미해지는 벚꽃이 싫고
희미해지는 당신이 싫다.
희미해지는 태양은 어느덧 달의 그림자를 만들고
낮과 밤 그 애매한 시간틈을
또 기어이 비집고 비집고 들어온 당신.
당신이여,
사랑에 충분히 설레어도 되나요.
하얀 꽃잎에 새긴 사랑
분홍빛 꽃잎에 각인된 동경
붉은빛 꽃잎에 수놓은 갈망
끝끝내 열매를 맺지 못할지어도
충분히 바람에 사랑에 흩날린다.

당신과 내가 있었던 자리, 이제 그 자리에 남아있는 건 나입니다. 비를 좋아한다는 당신은 그렇게 비처럼 내게 내렸다 사라집니다. 차라리 비를 좋아한다고 말하지 마시지... 비가 내릴 때마다 당신을 그리워하고 아플 내가 걱정이라고 하는 말이에요. 당신에게 느껴지던 사랑은 어쩌면 사랑이 아니었던 거예요... 당신에게 나는 장난감이었을 뿐이니까요. 그게 아니라면 날 이토록 외롭게 두지 않았겠지요. 필요 없는 곳에 너무 많은 사랑 주었나 봐요. 원래 돌아갈 자리가 없어졌어요.

"내가 말하기 전까지 말 안 하려고 했지?"
"아니야. 잊고 있었어"
"거짓말"
"진짜야, 삐진 거야?"
"내가 그만한 일로 삐질까 봐?"
"삐졌네, 삐졌어 단단히 삐졌구만?"
"아니래도"
"알았어. 그럼 다음에 할까?"
"아니, 지금 해"
말일, 약속한 날을 이틀이 지난 2일이었다.
아팠고, 바빴던 탓에 올해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더 이상 약속을 미룰 수 없었다. 미룰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빠, 나 소주 한잔만 마시고 양치하고 하자"
"너 그러다 진짜 알코올중독돼"
"내가 말했잖아. 오빠가 마셔야 할 술 내가 다 마셔버리겠다고^^"
"나 씻고 같이 마시던가"
"아니, 혼자 마실래. 매매 씻고 와~"
풉, 꼴짝꼴짝 마시던 술이 분명 늘었다. 빨대로 빨아드린 소주는 알싸하고 미간을 찌푸릴 정도로 쓰지만, 마시지 않을 이유는 내게 그 어디에도 없었다. 한 팩 중 3분의 1을 마신 내가 멀쩡하다니 웃겼다. 정신은 멀쩡한 듯했으나, 볼이 뜨거웠고 기분이 꽤 좋았다. 텅 비어 외롭던 슬픈 장면에서 웃음이 새어 나오는 희극으로 장르를 바꿔주는 건 첫 남자도 어른 남자도 아닌 소주였다. 이마저도 웃음이 나왔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심도 있는 고민은 술기운에 오래가지 못했다.
"야! 너 다 마신 거야?"
"아니, 많이 남아있지요~~~"
"근데 상태가 왜 이래"
"내가 어때서...."
"차라리 예전처럼 군것질을 해. 술 마시지 말고"
"싫어!!!!!"
"맨날 아까운 술 남기지 말고...."
"내가 돈이 없나, 사랑이 없지"
"무슨 소리야. 다음에 할래?"
"싫어 지금 해. 오늘 안 하면 내일 할 거잖아? 그냥 지금 해,, 지금"
"다음에 해"
"싫어. 해. 사랑해"
"아! 다음에 하.."
"이제 내 맘 알겠어? 술 마시고 하는 게 어떤 기분인지?"
"왜 또 울어 ㅠㅠ 왜 왜 ㅠㅜ 나 또 잘못했어?"
"그니까 지금 하자고..."
"응, 사랑해"
"양ㅊ..."
양치를 하지 못했다. 개의치 않아했다. 그는 결벽증이 없으므로... 입술을 떼지 않고 요람자세로 안아 서재실로 향했다.
"너 살 좀 쪄야겠어"
"괜찮아"
서재실이 정리 중이라 다시 돌아 거실로 나왔다.
"오빠, 나한테 술 냄새 많이 나지?"
"괜찮아. 술 마시는 거 같고 좋아"
식탁의자에 그가 앉고, 나는 그 위에 포개어 앉았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사랑해 **야"
시작을 알리는 말. 입술을 한 번도 떼지 않았고, 그렇게 알몸이 되었다.
"내려와"
"싫어 이렇게 해"
"왜 맨날 니가 위야?"
"나 동생이잖아.. 넌 오빠고, 그러니 양보해"
"이럴 때만 동생이래"
그는 동생이 없다. 그래서 동생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거 같았다.
술기운으로 뜨거워진 몸과 금방 샤워를 마친 그에게서 좋아하는 향기가 나를 어지럽혔다.
"왜 자꾸 빼는 거야"
그는 양손으로 엉덩이 잡아 내게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손을 입에 넣었다.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손 빨지 마"
내 양손을 그의 한 손에 잡힌 채로 그가 움직였다. 입에 뭔가가 들어가야 불안이 낮춰지는데.. 급한 대로 그의 어깨를 입에 넣었다. 내가 한 행동을 그대로 내 목덜미에 했다. 밀어버렸다.
"싫어. 그거 하지 마"
그는 하지 않았고, 내 손은 놓아주었다. 입속으로 손을 넣고서야 안정을 찾았다. 불안이 높으면 하는 방어적인 행동이었다.
그렇게 나는 우리의 약속을 지켜냈다. 약속이었으므로.
그가 욕실로 들어갔고, 나도 안방 욕실로 살금살금 까치발로 들어갔다. 살이 벌게진 정도로 뜨신 물에 샤워를 했지만, 시린 마음은 따뜻해지질 않았다.
그렇게 나는 원래 내 자리를 잃어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