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1-263 착각은 자유라죠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물어보지 못할 말을 나는 오늘도 글로 적어봅니다.
당신은 나를 조금이라도 그리워했을까요.
당신은 나를 조금이라도 보고 싶어 했을까요.
당신도 나처럼 가끔이라도 나를 떠올리곤 할까요.
궁금해지곤 해요.
오늘, 당신 하루는 행복했을까요. 아니, 어제겠군요.
난 당신이 행복한 일이 많아 많이 웃었으면 해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신의 미간을 찌푸리며 찡그림을 덜 좋아한다는 소리는 아녜요. 다만 당신이 힘들거나 행복하지 않을 시, 내가 받을 아픔을 걱정하는 것뿐이지요. 당신은 내 전부니까요.
하루를 통틀어 가장 많이 하는 게 무엇인지 아세요? 바로, 당신을 떠올리는 것이에요. 당신의 마음에 들어가고파 이래저래 골머리를 앓고요, 관심 없던 쇼핑을 하기도 해요. 혹여나 당신이 날 한번 더 봐줄까 봐서요. 비록 절대 그럴 리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주길 바라는 유치한 마음에서 비롯되어요.
그래서 혹시나 이 소설의 결말이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큰 그림을 그려봅니다.

해지는 노을이 깔린 저녁시간이 되면은요,
그리움에 묻혀서 당신 생각을 하곤 해요.
#기다림
마른하늘이 유독 흐린 날이었다.
바닥에서 나는 흙내음은 비오기 전의 기분 좋은 냄새가 아닌, 미세먼지 냄새였다.
나는 15분 전에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다.
마지막까지 그와 엇갈리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가 마중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마음을 부풀리고 기다렸다. 내 탓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채 다 열리기도 전에 그가 날 볼 수 있는 위치에 서서, 그를 보면 어떤 표정으로 무슨 인사말을 꺼내야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었다. 그 기다림은 행복을 만끽하기 충분했으므로.
약속한 시간이 정각을 가리켰지만, 엘리베이터는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엘리베이터가 움직였지만, 1층에 멈춰 서지 않았다. 15분을 가만히 서 있던 나는 어지러웠고, 그 자리에서 쪼그려 앉아 기다렸다. 문이 열리면 벌떡 일어나야지. 이렇게 쭈굴거리는 모습을, 많이 기다렸다는 티를 내지 말아야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그도 엘리베이터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언제 올지 모르는 나를 무작정 기다리는 그 남자에게 몹시도 미안했다. 미안함만 느낀 건 아니었다. 그의 큰 배려가 나를 빠르게 그의 사랑으로 감싸주는 듯했다. 나는 또 마음대로 오해하고 말았다. 그건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3분이 지났다. 고민을 해야 했다.
계단으로 가야 하나, 아니면 그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엇갈리면 어쩌지. 마지막을 그의 마중을 받고 싶었다. 그래야 원이 없을 듯했다. 그러나 약속한 시간이 5분이 지나도 움직이는 않는 엘리베이터를 뒤로 하고 나는 계단을 올랐다.
행복한 상상들로 붕 떠있던 마음은 한순간에 물먹은 스펀지처럼 무겁게 나를 짓누르고 있었고, 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을 흘리며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겼다. 실망한 마음을 숨길 수 있는 어른은 어디에도 없었다.
바쁠 거라고, 그가 바빠서 마중을 나오지 못했을 거야 라며 서운한 마음을 어르고 달랬다. 예상했지만, 바쁜 그의 모습에 속이 상하고 말았다. 그의 배려를 받고 있는 다른 작가와의 모습에 무거운 몸을 끌고 온 힘이 순식간에 내게서 스르륵 빠져나가버렸다.
눈물이 났다. 샘이 나는 건 아니었다. 아닌가? 샘이 나서 그런 건가. 아니다. 분명히 아니다.
여태 다른 작가와 다정하게 지내는 것을 나는 보지 못했다. 나에게만 특별하게 대하는 줄 알았다. 아니, 그래 주길 바랐다. 그건 내가 하는 완벽한 착각이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모두 공평하게 친절했다. 예외는 없었다. 나라고 별반 다를 게 없는.. 그저 나는 많은 작가들 중 하나였다. 다른 이변은 어디에도 없었다. 한번 터져버린 눈물은 쉬이 멈추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에, 화장실로 향했다. 눈물로 번진 내 눈에 그의 뒷모습과 작가의 뒷모습이 담겼다. 어쩔 수 없이 내 눈은 언제나 그에게로 향하기 때문이다. 죄다 서러웠다. 힘이 빠져버려 손하나 까딱 할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눈물을 그에게 보일 순 없었다. 차가운 물에 손을 빡빡 씻는 거 외엔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는 작가와 편집을 끝내고 내게 왔다. 서운한 마음은 그를 본다고 해서 쉬이 풀리지 않았다. 그의 얼굴을 보니 더 서러웠다. 금방이라도 15분 전부터 기다렸다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주인 기다리는 똥개처럼 부푼 가슴 안고 꼬리 흔들고 서 있었다고, 왜 기다리게 했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내게는 그럴 만한 용기가 없었다. 그리고 그랬다간 '내가 내려간다고 기다리라 했소?'라고 되물어보면 나는 말문이 막힐 것 분명한 일이기에.
그러나, 그는 세심하게 남의 표정과 분위기를 잘 알아채는 공간지각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기분 안 좋으냐고, 힘이 없어 보인다고, 피곤하냐고 묻는 그에게 일이 바빴다고 대답했다.
곧이어 따뜻한 목소리로 늦어서 미안하다는 그의 말에 잠깐 그에게 서운했지만 금방 다시 좋아졌다. 잠시 토라지다가도 속수무책으로 무장해제 될 수밖에 없다. 나는 그에게 그렇게 되어버렸다. 저물어가는 해는 내일이면 다시금 떠오를 테고 그를 향한 사랑은 좀처럼 형체를 감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