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1-257 마지막이기를

나요, 엄청 많이 먹는 거 알죠?
나는요, 당신이 나를 사랑해 주는 상상을 밥먹듯이 해요. 얼마나 많이 하는지 지레 짐작하시려나요. 온통 내 머릿속에는 당신뿐이에요. 우습게도, 내게 사랑을 요구한 적 없는 당신에게 사랑을 주지 못해서 안달이에요. 이렇게 좋으면서 또 막상 당신을 보러 가면요, 당신의 눈도 똑바로 마주할 수 없는데 말이죠. 당신한테 이런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내 쪽에서는 안감힘을 쓰는 거니까요. 바보같이, 눈만 마주치지 않으면 들키지 않을 거라는 어리석은 착각이죠. 당신의 말투와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모조리 다 담아 오고 싶은데, 집중이 잘 되지 않아요. 귓가를 가득 채운 내 심장 소리 때문에요. 그래서 몹시도 속이 상합니다. 결국, 전하고픈 이야기는 한마디도 못한 채 바보 같은 소리만 주야장천 떠들고 와버리고 말죠... 자꾸 당신 앞에서만 못나기 짝이 없는 내 모습이 안쓰러워요. 당신 같이 흔들림 없고, 다정한 사람이 나를 사랑해 줄리 만무한데, 자꾸만 바라게 되는 내가 몹시도 슬퍼요. 당신은요, 당신을 만나고 돌아서 가는 나를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셨나요. 방금 당신을 보고 가는데도 사무치게 그리워 한번 더 보고 싶지만, 돌아갈 명분과 핑계가 내게는 아무리 떠올려도 없어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어르고 달래고 가는 나를 한 번이라도 떠올려보셨나요. 당신 곁에 사랑과 마음을 전부 고이 두고서 빈 껍데기만 가는 내가 어떤 마음인지 헤아려보셨나요. 돌아가는 길이 얼마나 애달프고 아픈지.. 당신은 아시나요. 그러실 리가 없겠죠.. 그래서 그만하려고요. 이제 그만하고 싶어요. 다 그만두고 싶어요.

오늘 달이 너무 예쁘게 떴어요.
그런 달을 보고 있자니, 유독 당신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했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사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요. 사랑을 숨기고 우정이라고 바락바락 우기고 발뺌할걸 그랬어요. 그랬다면, 조금은 더 쉬웠을까요..
그만할래요. 이제 모르는 사이가 되어볼래요. 나 혼자 기대하고 실망하고 수없이 반복한 일을 이제 그만할래요. 지금 하는 다짐이 얼마나 갈지 몰라요... 좋아하지 말아야지, 사랑하지 말아야지 적어도 오만번은 더 했을 거예요. 매번 실패하기 일쑤였지만, 이번엔 달라요. 진짜 진짜 사랑 안 할 거예요.
당신은 다 알잖아요. 다 눈치채고 있잖아요! 전부 알면서 내게 생글생글 눈꼬리 늘어뜨리고 날 홀리는 거잖아요. 애당초 받아줄 것도 아니면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내가 다가가면 나를 사랑해 줄 것처럼 굴었잖아요. 얼마나 내가 우스워보였겠어요. 당신의 사소한 행동에 일일이 반응하고 좋아하는 날 보며 내가 얼마나 쉬워 보였겠어요. 갈 때마다 '나에게만 이러나' 하면서 부질없는 상상을 하며 행복에 젖었다가 '모두에게 다 이러겠지' 하면서 얼마나 허탈했는지 당신은 절대로 모르실 거예요.
그래서 그만하려고요. 당신 앞에 나타나지 않을게요. 보고 싶지 않으시겠지만, 기다리지도 않으시겠지만, 당신 앞에 나타나는 일 없을 거예요. 우연히 마주칠 적에는 황급히 등을 돌려 당신을 피해볼게요. 최선을 다해 당신을 잊어볼게요.
좋아하고 사랑했어요.
끝이에요. 혼자 한 사랑이니 인사할 것도 없네요.
딱, 마지막 한 번만 당신을 보고 관둘게요. 그 정도는 괜찮죠?
사랑하고, 동경했어요.
아직은, 좋아하고 좋아해요.
여전히, 사랑하고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