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1-246 만약에 말이에요

만약에 말이에요, 당신이 내 글을 본다면 아침에 읽었으면 좋겠어요. 왜냐면은요, 출근하기 전에 내 글을 읽고 당신이 행복했으면 하거든요. 당신을 향한 나의 고백을 읽고서, 내 사랑의 에너지가 당신의 하루에 머물러 온종일 안온하고 평온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주신다면, 사랑을 쓰는 내 손에 힘이 들어가고, 어깨는 한층 으쓱 올라갈 거 같아요.
하지만, 당신이 내 글을 보고 마냥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요. 당신은 나와 같지 않으니까요...
나도 알아요, 매일 북 치고 장구치고 혼자 기뻤다가 또 혼자 풀 죽은 듯 축 쳐졌다가 하면서 반복한다는 걸요... 이럴 바엔 차라리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 나았을 거 같아요. 그런데요, 어디 사람 마음이란 게 뜻대로 되나요. 다들 마음이란 게 마음대로 되지 않아 매번 애를 먹는 쪽 아니겠어요. 솔직히 나도 바란 적 없어요. 한사코 말이에요.
당신한테 내 마음속에 들어오라 한적 없고요, 당신에게 내 기분을 통째로 맡기고자 한 적도 없어요. 당신은 너무도 쉽게 나를 슬프게 만들고요, 당신은 어렵지 않게 나를 설레게 만들어요. 그뿐이게요? 날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눈 마주치면 살갑게 굴고요, 나한테 오지 않을 거면서 예쁘게 웃고요, 날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머리 쓰다듬어요. 당신이 그런 행동을 하면, 나는요, 좋아서 미칠 거 같다고요. 내가 싫으시면, 부담스러우시면 더 이상 나에게 상냥하게 굴지 말라고요. 그래야 나도 마음을 정리하지 않겠어요?
나요, 자꾸만 헷갈린단 말이에요. 당신도 나와 같은 마음이실까 하면서 내가 조금만 더 매달려주기만을 기다리는 건가 하면서 말이에요... 이게 그 유명한 희망고문이겠죠? 에레기....
당신의 온기가 묻은 모든 행동들이 정갈하게도 그리워요.

나의 몸을 욕망하는 게 그토록 황홀하게 느껴졌던 것이 당신이 처음이었어요. 당신의 피부는 매끄러웠고, 끌어안을수록 시리고 아련함이 묻어나 좋았고요, 가까이서 보는 당신의 눈동자에 내가 비춰보여 좋았어요. 한없이 만지고 만져지고 싶은 욕정을 알아버렸어요.
내가 당신에게 그러하듯, 누군가도 내게 그러한 것 또한 당연하겠지요. 그런데 왜인지 너무 싫습니다. 전에는 싫다고 생각한 적 없었고, 거기에 별 의미를 두지 않았어요. 지금은 죄다 싫어요.
-며칠 전
왕복 6차선 도로 위.
강연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낯선 도로 위였다. 1차선은 좌회전만, 2차선은 좌회전과 직진이 함께 가능했으며, 3차선은 직진과 우회전이 가능한 도로였다. 나는 2차선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신호를 기다리는, 운전 경력 15년 이상의 무사고 베테랑이었다. 발통 달린 것 중에 제일 자신 있는 종목이 바로 운전이었다. 기다리던 녹색불이 켜지고 좌회전을 하려는 순간, 1차선에 있는 차량과 내 차는 뭐 때문인지 부딪히고 말았다.
처음 사고였다. 불안이 있는 내게는 너무나 큰일이었다. 덜컥 겁이 났다. 창문을 두드리는 낯선 남자, 용수철 마냥 튕겨나가 상대를 살폈다. 뭔가 굉장히 짜증 섞인 표정에 내가 실수했나 보다 싶었고, 다친 곳과 함께 죄송하다고 말을 이었다.
뒤에서는 차가 빵빵 거리고, 상대차는 아무 말 없이 허리에 양손을 올린 채 본인차와 내 차를 번갈아 보고만 있었다. 잽싸게 전화기를 꺼내 첫 남자에게 상황을 알렸다.
"상대차 비싼 차야??"
그의 첫마디였다. 나의 안부를 묻는 말이 먼저가 아닌, 상대 차와 내 차의 안부를 먼저 물었다. 씁쓸했지만, 비싼 차는 아니란 나의 대답에 안심해했다. 그의 다음 말에 나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니깐, 운전하지 말랬잖아"
나는 그런 대화를 듣고 싶어 전화를 한 것이 아니었기에 끊어버렸다. 전화가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
"아가씨, 운전을 와 이렇게 합니까. 거기서 갑자기 좌회전을 하면 우짜자고"
"죄송합니다. 많이 다치셨어요?ㅠㅠ"
낯선 사람의 볼멘스러운 소리는 나를 더 한 불안을 만들었고, 상대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지만 더 이상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손 끝이 차가워지고 있었다.
"아저씨가 잘못해 놓고선 왜 예먼 사람을 잡아요? 블랙박스에 다 찍혔으니깐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누군가 내 뒤에서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몇 마디 나누는 소리가 지나가고, 드디어 꿈쩍도 하지 않을 상대 운전자는 사진을 연신 찍어대며 본인 차에 올랐다. 그리고 내게 걱정 말라는 사람도 내 차와 상대차를 꼼꼼히 사진을 찍었다. 상대 운전자가 갓길에 비상깜빡이를 켜고 멈춰 세웠고, 나도 따라 갓길에 세웠다. 그리고 날 도와주던 모르는 사람도 내 뒤에 세웠다.
"괜찮으세요? 그쪽은 잘못 없으니깐 너무 겁먹지 마요. 블랙박스 다 찍혔으니깐 필요하면 드릴게요. 괜찮아요"
너무나 고마운 사람이었다. 불안이 한풀 꺾이고 있는 듯했다. 아직은 살만하다는 말을 이날에서야 처음 몸소 느끼게 되는 계기였다. 결국, 보험회사에 연락을 했고, 누군가가 경찰서에 신고를 했는지, 경찰차도 왔다. 내용은 이러했다. 상대 운저자는 좌회전만 되는 1차선에서 직진을 하려 했고, 그러다 2차선에서 좌회전을 하려는 나와 사고가 났던 것이었다. 잘못은 상대 운전자가 했지만, 나의 반응을 보고 큰소리를 쳤다고 이실직고하는 솔직한? 상대 운전자의 답변. 쿨내진동하게 내게 사과를 하셨지만, 반면 나는 쿨함과는 정반대의 사람이다.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아, 차 수리를 하고 보험회사를 통해 연락하겠다며 일단락되었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던 사람은 나의 안부를 물었고,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도와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무서웠는데 덕분에 잘 해결되었어요.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당연한 일인데요 뭐. 누구라도 이 상황을 봤으면 도와줬을 거예요"
"뭐라고 감사 인사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닙니다. 괜찮아요. 제가 찍은 사고 사진 보내드릴게요. 연락처 좀 알려주세요"
"아, 네!"
그 자리에서 사진을 내게 전송해 주었다. 그리고 필요하면 블랙박스 영상도 보내준다고 연락하라는 말만 남기고 그는 유유히 떠났다.
그날저녁 문자를 하나 받았다.
<몸은 괜찮으세요? 접촉 사고 뒷날 아프고 뻐근할 거예요. 불편하면 꼭 병원 가서 진료받으세요>
<걱정해 주셔 감사합니다>
뒷날 저녁 또 문자가 왔다.
<블랙박스 영상 보냅니다. 아직도 목소리 큰 사람이 장땡이라는 표본이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그쪽 덕분에 아직 세상은 살만하구나 싶었어요>
<몸은 괜찮으세요? 그날 많이 놀라셨을 텐데...>
<걱정 감사합니다. 덕분에 이제 괜찮아요. 남은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
어제도 또 문자가 왔다.
<보험회사 연락은 왔어요? 잘 마무리되었나요?>
<차 수리 중이라 마무리는 그 뒤에 될 거 같아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쯤 되니... 사례를 바라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이에요. 혹시 제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연락드려봤어요>
<저기... 계좌번호 주세요>
역시 돈을 주고받고 하는 상황에서는 늘 어렵다. 내가 줘야 하는 입장이든 받는 입장이든 어려운 건 한결같이 매한가지다.
<제 계좌번호요? 왜요?>
<사례하고 싶어요>
<왜요?>
<감사해서요>
<필요 없어요. 제 호의가 그쪽에게는 호의로 보이진 않았나 보네요>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계속 연락하시길래 사례를 바라는 건가 싶기도 하고 저도 사례를 하고 싶어요>
<필요 없습니다>
더 이상 내게는 할 말이 없었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고 또 문자가 왔다.
<직접 보고 이야기해요>
<네? 무슨 이야기를요?>
<얼굴 보고 이야기하자고요>
<네, 실례가 안 된다면 남편이랑 같이 나가도 될까요?>
<결혼했어요?>
<네,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인가요?>
그에게서는 더 이상 답이 없었다.
혹시나 하고 내 차 블랙박스를 저장하는 첫 남자에게 내 뒤차에서 찍은 블랙박스도 있다며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뉘 집 자식인지 바르게 잘 컸다며 내게 도와준 청년을 첫 남자가 연신 칭찬했다.
"근데 이 파일 어찌 받았어?"
"문자로"
문자내용을 다 봤나 보다.
"이 새끼 한 번만 더 문자 오면 말해. 아니다. 내가 지금 전화할게".
"아니, 왜! 전화해서 뭐라고 하게. 지금 너무 늦었어"
"뻔하잖아"
"뭐가 뻔해"
"아주 빤해. 니만 몰라"
"어쨌든, 연락 안 오잖아. 아줌마인 거 알고 연락 안 오면 됐지 뭐"
"니 머리 잘라"
"싫어!!!!!!!! 두 번 다시 초딩 머리 안 한다고 했제!!!!!"
"괜히 니 사주를 봐서.."
"선무당 말을 믿어?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사람들이 하는 말을 믿는 거야?ㅋㅋㅋ"
"그래도, 젊은 남자 손탄다는 말이 자꾸 거슬려"
"ㅋㅋㅋㅋㅋㅋㅋ 얼토당토 안 한 말에 신경 쓰지 말고 지금 내가 하는 말이나 신경 써!!"
시간이 지날수록, 몸살기운처럼 몸이 으슬으슬한 듯하지만 이건 기분 탓이겠지? 원래 직업병으로 아픈 것이겠지?
내가 그에게 만지고 만져지고 싶은 것처럼 누군가도 내게 그러할 거란 상상은 끔찍이도 싫다.

늦은 밤,
코를 자극하는 비릿한 흙냄새가
미치도록 반가웠다.
곧이어
하늘을 울리고 봄비가 내렸다.
흙냄새가 곧 봄꽃을 피워내겠구나.
지천으로 발에 치이는 들꽃들도,
말라버린 나뭇가지에도,
꽁꽁 얼어붙은 땅과 강에도.
내가 품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인데,
품어야 하는 건 오직 이별뿐.
목 빠지게 기다리던 봄비는
몸은 적시지 않고
그렇게 내 마음만 적시고 적시다 가버렸다.
당신처럼.
단비 같이 내리는 비를 당신도 보셨을까요. 예고 없이 내리는 봄비로 당신이 너무도 그리워집니다. 어디 살고 계신지는 모르지만요, 당장이라도 당신의 집 앞에 가고 싶었어요. 당신이 머무는 곳에서 하염없이 비를 맞고 당신을 기다리고 싶었어요. 봄비가 내릴 때까지만요. 비 오면 만나자고, 만나러 가겠다고 약속한 적 없지만요, 혹시나 내리는 비로 내가 생각날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나와 당신이 만나게 되면요, 그건 틀림없는 사랑일 거잖아요. 사랑일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우연이라도 당신과 사랑으로 얽혔으면 싶어요.
그리움을 털어내지 못한 날에는 그 그리움이 영글어 또 사랑이 되어 내게 머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