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1-243 켜켜이 감춰둔

#거짓 사랑
다들, '거짓 없는' 사랑하고 계신가요?
밤만 되면 이유 없는 헛헛함이 온몸을 감싼다. 갑작스레 코 끝이 찡해졌다. 사랑하는 이가 미치도록 그리워서 울컥한 것이 아니었다. 눈가를 적시며 흐르는 눈물은 억울함이었다. 어둠에 몸을 숨기고, 울음소리를 숨겨 조용히 울었다.
예민한 성격 탓인지 잠에 잘 들지 못하는 편이다. 그리고 왜인지 모르겠으나 근래에 잠을 통 자지 못했다. 그리하여, 매달 하는 생리를 두 달 건너뛰었다. 그게 화근이었다. 질 좋은 수면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몸의 밸런스가 깨지고, 호르몬이 문제가 생긴다. 그러나 첫 남자는 그것을 오해했다. 아픈 상처를 들추고,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임신 초기, 허리가 끊어질 듯하여 진료를 봤었는데, 자궁수축으로 내 자궁이 아기를 밀어내 결국은 안아보지 못하고 떠나보냈다. 내 자궁이 본래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내 자궁이 내 아기를 품어주지 않고 밀어낸다는 것이었다. 엄마의 몸으로 아기를 사지로 몰아낸 내 몸이 너무도 미웠고 증오스러웠다. 엄마의 자격이 없다고 아기가 떠났나 보다... 생각하기엔 내게는 너무나 큰 상처였다. 한 번이 아니었으므로. 내 상처는 생각보다 컸다. 들추고 싶지 않았고, 분명 떠올리고 싶었던 지난날의 이야기였다.
분명, 산부인과에서, 한의원에서도 자연임신은 힘들다고 했고, 어렵게 임신이 된다 해도 유산은 피해 갈 수 없다고 했다. 그 말을 같이 들었음에도 첫 남자는 나와 생각이 달랐었나 보다. 내게 테스트기를 건넸다. 아니라고 했다. 내 배에 아기가 있는지 정도는 나도 느낀다고, 그런데 이번에는 아니라고, 분명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한 달이 지나도 사용하지 않았고, 생리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대하는 듯하여, 결국 테스트기를 사용했고, 결과는 내 예상이 맞았다. 아니었다. 다행이었다.

"내가 아니라고 했잖아"
"혹시 모르잖아"
"나한텐 상처라고..."
"만약에 맞으면 조심해야 되니깐"
"아니라고!!! 아니라고 했잖아!!!!!!!!!!!! 싫다고!!! 싫다고 말했잖아"
"왜 그래... ㅠㅠ"
"죽어버릴 거야!!!!! 만약에 임신이면, 그래서 또 아기를 못지켜내면 , 나도 같이 따라 죽어버릴 거야!!!"
나는 금방 강아지를 출산한 예민한 어미 진돗개처럼 외부인으로부터 제 자식을 지키겠다고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 거리는 것처럼 보였을게다.
깊은 밤, 모두가 잠든 고요한 밤.
끅끅, 소리를 참으며 한참을 울었다. 그 울음은 품어보지 못한 아기에 대한 미안함이 아니었다. 내 몸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나를 향한 화풀이 었다.
그렇게 밤새 토해내 울어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켜켜이 덮어두고 모른 척했던 지난 과거의 상처와 맞닥뜨린 것이었다.
데릴사위, 그놈의 데릴사위!!!!
다투면 나오는 레퍼토리다. 어째서 인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상대의 아픈 말만 골라서 하게 되는지, 왜 성숙하고 지혜로운 생각을 못하는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서로 상처가 될 말만 골라서 하는 나이나 먹은 철없는....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을 보고 첫 남자는 "넌 많이 가져서 그래"라는 말을 자주 한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분명 자격지심이다. 사전적인 의미로 스스로 미흡하게 여기는 마음. 정말 정확하게, 자격지심이다. 경제력이 있는 쪽이 돈을 더 쓰면 그만인 것을... 이마저도 많이 가져서 할 수 있는 생각이란다. 결코 첫 남자의 집이 많이 기우는 건 아니다. 그저 여자보다는 잘 살아야 한다는, 집을 해야 한다는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생각인 것이다.
"난, 데릴사위잖아"
"너 데릴사위 아니라고 했잖아! 데릴사위 후보에는 너 올라가지도 않았어. 넌 내가 선택한 거야. 너랑 손잡고 괜찮아서, 운명인 줄 알았다고. 그래서 선택한, 내 선택이라고!!!!!!"
진심이다. 스물아홉 살의 나는 운명이라 믿었었다. 내가 먼저 손을 잡아달라 말했고, 손잡고 있어도 결벽증 신호가 발동하지 않아 정말 운명의 남자라고 철썩 같이 믿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그렇게 첫 남자와 나는 얽히게 되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 상황에선 손을 잡아달라도 했을 것이다. 무서웠기에 어쩔 수 없다.
처음, 그러니까..
첫 남자를 만나기 시작했을 때, 겁이 많은 내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 안에서 빠르게 그에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화장실에 같이 갈 때도 마치 첩보영화처럼 따라가 주었고, 주유할 때도 전쟁 영화처럼 나를 숨겨주며 주유했었고, 맨홀 뚜껑 볼 때면 한껏 오버스러운 행동으로 시선을 옮겨주었던 그였다. 모든 걸 나에게 맞춰주는 유일한 남자였다. 그게 오래가진 못했다. 술이 문제였다.
잔뜩 술이 취해 들어온 날이었다.
내가 나를 지키지 못했던 순간이라기에는, 서류상 합법적인 관계였다. 성인 남자의 힘은 너무나 강했고, 술로 인해 이성적인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날 끌어안은 팔 안에서 그와 몸이 밀착되어 있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빠져나오려 발버둥 치고, 밀어냈지만 감당하지 못할 강한 힘이 억누르고 있는 나의 나약함이 싫었다. 끔찍했다.
내게는 끔찍한 시간이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그렇게 내게 상처만 주고, 옆에서 자는 그가 미웠다. 도망칠 수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 부모에게 돌아갈 수 없었다. 분명 반겨주셨겠지만, 그러기에 나는 더 그럴 수 없었다. 날 위해 모든 총받이는 엄마아빠의 몫이었으므로.. 용기가 없었다. 술을 깨면 언제나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너무 사랑해서 그랬어. 미쳤나 봐. 미안해"
다들 이렇게 산다고 했다. 집집마다 말은 안 해서 그렇지 이보다 더 한 삶을 산다고 했다. 나는 더 이상 내 생활에 불만을 품을 수 없었다. 다들 호강에 받쳐 요강에 똥 싸는 소리라고 핀잔을 주었다. 10년 정도 살면서 술을 먹고 힘으로 날 안았던 횟수가 5번이면 적게 했다고 안도해야 하는 건가.... 풉, 나는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원망한다. 쉬이 변하는 마음이 사랑이라는 감정이기에. 하나, 내가 하는 사랑은 다르다. 저들과는 다르다. 혼자 하는 사랑이라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랑이라 해도 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내 손끝에서 완성되는 내 글 속 세상을, 내 글 속에 있는 사랑을 지켜낼 것이다. 지켜줄 것이다.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