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1-242 티날 수 밖에

#미련
나만 놓으면 끝날 관계라는 걸 진즉에 알고 있었습니다.
열 번, 백번 상처받는 것보다 당신을 안 보는 게 더 아플 거 같아서 붙잡고 있었어요. 쓸데없이 고집부렸죠.
겁이 많아 라이터를 켜지 못해요. 그런데 왜인지,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나는요, 승부욕이 강하거든요. 라이터를 켜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눈에 불을 켜고 라이터를 붙들고 혼자 끙끙 씨름을 했어요. 사무실 언니들이 그런 나를 보고 혀를 끌끌 차면서 그만하라고 한 마디씩 거들었지만요, 나는요, 포기히지 않았어요. 미련한 일이었죠. 결국, 마찰력에 쓸리고 데이고 말았지요. 빨갛고 부풀어 오른 엄지손가락을 입가로 가져다 대고 호호, 불었어요. 보다 못한 짝꿍이 라이터를 가져가 단번에 내 향초에 불을 붙여주었어요.
"과장님은 역시 손이 많이 가는 타입이에요"
"......"
"약 발라요. 덧나면 쓰라리고 아프니깐"
"**씨는 좋겠어요. 예쁜 과장님도 맨날 보고..."
"네?? 예쁜 과장님이 어디 있어요???? 어디??"
"나 있잖아요"
"과장님, 요새 왜 그러세요. 갱년기예요?"
"아직 갱년기는 아니거든요!! 나도 잘생긴 직원이랑 일하고 싶어요"
"나 있잖아요?"
"**씬 잘. 생. 긴 뜻 모르죠??"
"고만 싸워라. 너네는 맨날 만나면 싸운다!"
왜 이 이야기를 하냐면요, 나 직업 바꿀까 해서요 ㅋㅋㅋㅋ 혹시 편집장님, 거기 사무실에 직원 필요하지 않으세요? 나요, 편집장님이랑 같은 사무실에서 하루종일 붙어 있고 싶어요. 아침마다 당신을 보고, 당신이 마실 차를 준비하고, 점심도 같이 먹고, 쉬는 시간에 쓸데없는 잡담도 하고, 윽.. 생각만 해도 너무 좋아요 ㅠㅠ 당신과 함께 일하면 너무 행복할 거 같은데 반면에 당신은 조금 귀찮아할 수도 있겠네요. 맨날 당신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이야기해 달라, 화장실 따라가 달라, 간식 먹으러 가자, 졸라대는 통에 말이에요. 그뿐이겠어요? 다른 작가들이랑 이야기도 못하게 방해할 거고요, 노골적으로 오피스 와이프 자처할 거예요. 나요, 뭐든 잘할 수 있거든요. 새로운 일이라도 금방 배우고 익힐 수 있어요. 거기 직원 뽑으면 연락 주실래요?? 아니면 혹여나, 편집장님 직업 바꾸실 의향 없으세요? 우리 사무실에 막내 뽑거든요. 경력 없는 사람 뽑진 않지만, 내가 힘써서 당신을 채용할 수 있게 할 수 있어요. 경력 없으면 어때요. 내가 당신 옆에서 잘 가르쳐줄게요 ㅎㅎ여기선 내가 과장이니깐요... 같이 야근도 하고, 당신이랑 회식도 하고, 야유회도 가고, 러닝도 하고.. 너무 좋을 거 같아요. 꼭 생각해 보세요. 나이가 많은 게 조금 흠이지만요. 사실 막내로 들어오기엔 나이가 너무 많지만, 내가 무조건 데리고 쓸게요!! 직업 바꾸실 의향이 있으면 당장 이야기해요. 아무리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당신이 오십 전에는 이직해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왜 그리 혼자 나이를 많이 드셨나요;; 한 번씩 당신의 나이를 생각하면 일시정지가 됩니다. 워낙 많으셔서;; 하긴.. 나도 30대 후반이네요.... 내 나이도 깜빡할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무쪼록, 당신이 내 옆자리에 있으면 너무 좋을 거 같아요! 종일 당신 옆에서 종알거리고 싶어요.
종일 당신만 보고 싶어요.
종일 당신 옆에 있고 싶어요.
종일 당신만 사랑하고 싶어요.

#거짓사랑
나는 키가 작다. 그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자존감이 낮은 게 아니라 정말 불편하기 때문이다. 머그컵을 꺼내는 일에도 의자를 끌고 와야 하고, 옷장 속 옷걸이도 최대한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어야 겨우 옷을 걸 수 있다. 그마저도 실패하면 또 무거운 의자를 끌고 와야 하는 번거로움. 그중에서도, 냉장고 상단에 손에 닿을 둥 말동한 걸 겨우 발가락에 힘주어 꺼내다 더 뒤로 밀려가게 되면 그것만큼 열받는 일도 없다. 키 큰 사람들은 내 이야기가 마냥 웃기게 들리겠지만, 나는 키가 작아 불편하다. 나와 다르게 나의 어른 남자는 키가 크다.
전에 굽이 거의 없는 샌들을 신고 갔었는데, 마주 보고 있는 그가 굉장히 커 보였다. 날 분명 난쟁이 똥자루라 생각했겠지? 그때 이후로 나는 절대 그를 보러 가는 날에는 굽이 없는 신발을 신고 가는 법이 없다..
그와 나는 나이 차이도, 키 차이도 많이 난다.
보고 싶은 얼굴을 보기 위해 나는 오늘도 펜을 들고 글을 쓴다. 분량의 글을 쓰면, 어김없이 그를 보는 일에는 마음이 움직이기 마련이다. 커질 대로 부풀어 오르고, 이내 벅차오른다. 내 꿈이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이지만, 지금은 그를 보기 위해 글을 쓰는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그 마저도 그를 보면 이 의문은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 버리곤 한다. 그는 내 유일한 숨구멍이니까.
작은 키는 구두에 숨기고, 사랑하는 마음은 어색함 뒤에 숨기고, 그를 보면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는 마스크 속에 숨기고 나는 오늘도 거짓을 무장하고 어른 남자를 보러 간다. 높은 구두를 신고, 어김없이.
막상 그를 보면, 무슨 수를 써도 그에게 결코 닿지 않을 운명과 그럴 수 없는 상황들이 화살이 되어 내게 비수처럼 꽂히지만, 괜찮다. 아프지 않다. 내 걸음보다 두 걸음 앞서 걸어가는 그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 마음을 멈추는 일은 퍽 쉬운 일이 아니므로. 화살이 여기저기 박힌 채 그를 뒤따라가는 뒷모습은 분명 처량하겠지.
어른 남자 앞에선 쉬운 게 하나 없다. 숨 쉬는 일조차 조심스럽다. 내 모든 행동과 말, 눈빛과 숨소리에는 그를 향한 사랑이 담겨있으니깐. 그럼에도 나는 그 모든 걸 그와 함께 하고 싶어 한다.
-회의실 안
'내 사랑이 그에게 들켜선 안돼.. 절대'
사랑을 꽁꽁 숨기고서, 그와 나누는 대화는 그를 끝없이 욕심나게 한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을까.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내가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당연하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나를 쉽게 무너뜨리기에..
'전 재산을 주고서라도 내게 데려오고 싶다.
그를 망하게 하고 그를 구원해 줄까, 그럼 내게 올까'
별 시답지 않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지만, 나에게는 절실하다. 말했듯이 진심을 전하기엔 용기가 없고, 돈을 앞세우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빌어먹을.
'나, 만나볼래요?'
분명하게도 알고 있다.
같이 할 수 없음과 같이 해서는 안 되는 것을.
그럼에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한다. 그의 마음을 가질 수 없다면, 껍데기라도 가져야 그 추억으로 살아가고, 또 글을 쓸 수 있을 테니깐. 우습게도, 그를 사랑하고부터 내 모든 글들이 술술 잘 써진다. 마치 그전에는 사랑이 없어 글이 막혔던 것처럼 봇물 터지듯이 글을 써 내려간다.
그를 사랑하는 것인지, 글을 사랑하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온통 내 글에는 어른 남자뿐이지만 말이다.
회의실에는 긴 책상이 하나 있는데, 키가 작은 나는, 책상에 올라 무릎을 꿇어야 그와 눈 마주 볼 수 있다.
대체 어디서 용기가 난 것일까. 그의 눈높이를 맞춰 무릎을 꿇고 얼굴을 마주했다. 그의 선한 코와 작은 입을 가린 거추장스러운 마스크를 벗겨낸다.
분명, 날 밀어내지 않을 어른 남자임을 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보고 싶었어요"
문이 없는 회의실 밖으로 목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속삭였다. 대답하기 어려운 듯 그는 미안한 표정으로 예쁘게 웃는 그.
날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새벽녘 호수처럼 투명했다. 잔잔한 물결 위로 햇살이 내려앉을 때마다 수면이 반짝이는 빛을 머금은 것처럼, 그의 눈빛은 미묘하게 날 끌어당기고 있었다.
'어째서 저런 눈을 갖고 있는 거지? 중년남자가...?'
풉, 역시 내 생각대로 그는 날 밀쳐내지 않았다. 어딘가에 집중하면 입술을 앙! 다물고 있는 그. 그런 그의 턱을 잡아 아랫입술과 윗입술에 틈이 생기게 만들었고, 나는 그 틈에 그의 입안으로 내 입술을 겹치게 했다. 미지근한 그의 감촉은 쓸데없는 생각들을 모조리 녹여버리기에 충분했다. 수없이 긴 밤을 사무치게 그리워한 일에 대한 보상이었다. 마치 나의 잃어버린 시간들을 끌어안듯, 그의 혀를 끌어안았다. 긴긴밤을 지새운 나에 대한 그도 분명 책임이 있으니깐. 알싸한 치약맛과 그의 달달한 단 맛이 서로 뒤엉켜 또 다른 맛을 만드는 동안 내 두 손은 자유로웠다.
"만지고 싶어요"
'여기선 안돼' 따위의 말은 하지 않았고, 내게 다시 웃음을 보였다. 그가 내게 줄 수 있는 건 웃음뿐이었으니깐. 내게 마음을 주진 못하니깐. 그럴 마음이 없는 사람이니까. 그가 웃는다는 건, 긍정의 의미다. 이 정도는 아는 사이가 되었다. 사실, 거절을 표했어도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내 손이 닿는 곳마다 그는 내가 만질 수 있게 도와주었다. 나와 같지 않은 마음에 대한 미안함이 그의 행동 여기저기에서 피어났다. 그래, 연민과 동정보다는 미안함이 더 나은 듯싶었다. 손바닥에 닿는 그의 상체는 한없이 부드러웠고, 할 수만 있다면 그의 피부를 가져오고 싶었다. 손가락 사이에서 움트는 그의 살결이 마치 내 몸과 한 몸처럼 반응했다. 나의 손가락 사이사이를 춤추듯 움직이는 그의 예민한 가슴을 혀로 살살 달래주기로 했다. 그의 품안은... 넓었고, 따뜻했다. 혀에서 느껴지는 그의 예민함이 주는 강한 자극보다 그의 넓은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혀로 어루만지고 있는 내 모습이 충분히 야했으며, 충분히 젖게 했다. 그를 매일 끌어안고 살아갈 여자가 일순간 미워졌다. 못난 감정들이 불쑥 올라와 당혹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그의 촉촉한 아랫입술이 작게 벌어졌다 다물어졌다 하는 틈에 입 속 그의 혀가 무척이나 예뻤다. 할 수만 있다면, 혀도 가져오고 싶었다. 마주 보고 있어 그의 눈과 자주 마주쳤다. 두 눈에 그득한 슬픔이 그에게 들켜버릴 것만 같았지만, 피하고 싶지 않았다. 그 예쁜 눈도 가져오고 싶었다. 마주 보고 있어 좋았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얼굴을 마음껏 보고, 만질 수 있어 무척이나 흥분되는 일이었다. 그의 낮은 숨소리를 가까이서 들릴 때마다 무릎 꿇고 있는 두 다리는 힘이 자꾸만 풀려갔다. 내 손은 허락 없이 그의 바지 속으로 집어넣었다. 나의 의지로 그런 것이 아니기에. 동의를 구할 필요는 없었다. 내 손이 기억하는 그의 몸은 매번 기억을 정정해야 했다.
"편집장님"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대신 더 깊이 손을 넣어 그의 가장 연약한 부위에 도착했다.
'똥멍청이, 내게 무방비하게 약한 부위를 내어줘선 안된다니깐'
부드러움과 단단함이 한꺼번에 내 손아귀에서 느껴졌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내가 바란 게 이런 걸까. 내 마음대로 휘두를 수 없는 사람을 미워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는 복잡한 마음에 어지러웠다.
당장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 될 듯싶어 결국 그에게 뒤를 돌아보였다. 그는 내가 뭘 원하는지 죄다 아는 어른 남자였으니, 민망하지 않았다. 민망함을 찾을 수 없을 만큼 그를 갖고 싶은 욕망은 부풀어있었으니까. 내게 비집고 들어온 그는 가득 찼으며 벅차올랐다..
할 수만 있다면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이번엔 입에다 해줘요"
대답이 없었다. 대답 없는 것 또한 대체로 긍정인 편이다. 그마저 귀여웠다. 사실, 나와 그는 별 대화가 없다.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는 사람에게 더 끌린다 생각했었는데 분명 아니었다. 나는 이토록 이 남자에게 빠져있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 가끔은 이 사랑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잡힐 듯 말 듯, 결코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는 그. 그런 그에게 내 마음은 고문을 당하고 있으니깐. 그를 사랑하는 만큼, 내가 받는 고문을 그도 받았으면 한다. 그가 날 사랑한다면 그에게 날 보여주지 않을 일로 고문을 하고 싶지만, 그는 나와 다르다. 그랬다간 내가 먼저 말라죽어버리겠지. 내게 향하는 마음은 오로지 연민, 동정, 미안함이기에... 그뿐이니깐. 더 바라지도 않는다. 손발을 꽁꽁 묶어서 감지럼을 태우면 속이 시원할까. 의자에 묶어두고 그 앞에서 울어버릴까. 나만 볼 수 있게 철창 속에 가둬버릴까. 그래서 나만 사랑하게 할까. 그래, 그게 좋겠다. 사랑하지 않는 상대를 사랑해야 하는 고문만큼 더한 고통은 없을 테니깐. 당장이라도 그를 훔쳐와 그렇게 하고 싶다.
'숨 막히게 당신과 얽히고 싶어'
마음이 없는 몸은 껍데기일 뿐이지만, 그래서 슬픈 일이긴 하다만, 그래도 잠시 그를 소유할 수 있어 행복하다. 자존심 따윈 개나 준 것이 분명하다. 원래 이러지 않았다. 구질구질, 찌질, 비참 이런 단어들은 나와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내게 가당치 않은 단어들이었다. 감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죄다 못난 단어들이 날 향하고 있다.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겠다.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마음.
모든 것들이 갑갑하고, 답답했다.
"편집장님 여기 앉아요"
내 말에 고분고분 앉아주는 그가 왠지 밉다. 나에게 한없이 잘해주는 그가 얄밉다.
'나 좀 사랑해 주면 안 돼요?
다 해주면서 왜 사랑만은 안된다는 건데요'
그의 무릎 위에 포개 앉았다. 나의 세상으로 미끄러져 들어온 그로 현기증이 났다. 몸이 으스러져도 그와 함께 하고 있는 지금이 좋았다. 그의 눈동자는 매번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깊고 투명했으며 그 안은 텅 비어있었다. 그의 눈동자에 내가 비칠 때마다 날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하다. 함께 할 순 없지만, 지금만큼은 함께임이 분명해지는 순간이니까_내 안에 그를 담고, 그 안에 내가 담겨있으니까.
그에게서는 착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미 그를 사랑한 순간부터 나와 착함 사이가 틀어졌음이 틀림없다. 그의 깊은 눈매, 태연하려고 하는 표정, 느긋하려는 손길, 모든 게 익숙하지만, 낯설게 다가왔다. 모든 행동과 손짓, 눈빛에 의미를 두지 않으려 했다. 외사랑은 짝사랑이 힘들고 지치는 이유는 별 것도 아닌 행동을 과하게 해석하는 편이므로 지금만큼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저 본능과 육체 그리고 쾌감과 욕망만을 빠르게 채우기로 했다. 나에게선 도덕적 기준에서 선을 넘은 지 오래되었으니까. 내게 뭐든 그의 것들로 채워야 했으니깐. 사랑이든 쾌감이든 비어있는 마음을 뭐로든 채우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으므로.
그의 낮은 숨소리가 공기 중에 흩어져나가는 것이 아까워 나의 혀로 그의 따뜻한 숨소리를 내 입으로 끌어왔다. 아래에서 느껴지는 그의 따뜻함과 혀에서 느껴지는 미지근함. 그 순간, 그와 내가 비로소 하나 됨을 알았다.
"너무 좋아요"
내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톤 높았고, 끝부분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통제할 수 없을 만큼 좋았다.
"당신 없이 사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
직접 입 밖으로 뱉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늘 그와 있을 때면 모든 행동과 대화를 담아 오려 노력하지만, 그 앞에서는 나의 이성은 옴짝달싹도 하지 못한다. 오롯이 사랑과 본능만이 나를 주도하기에...
"쌀 거 같은데"
"싫어! 참아요"
"아니, 싫은 게 아니라 쌀 거 같은데"
"이렇게 오래 있고 싶어요"
"못 참아요"
내가 봤을 때 그의 최대 단점은 참을성이 없다는 거다. 왜 못 참는다는 거지? 참으면 그만인 것을... 막내라서 그런가. 참을성 없는 그의 말에 그의 무릎에서 내려와, 허벅지 사이로 들어갔다. 그의 가장 낮은 아래에서 뜨겁고 단단한 곳을 혀로 껴안았다. 더 아래, 그의 연약한 부위가 외로워 보였다. 하여, 내 입안으로 끌어왔다. 늘 단단하고 흔들림 없어 보이는 나의 어른 남자는 나의 혀 움직임에 반응하며 움트는 모습이 귀여웠다. 묘하게 갑을관계가 바뀐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하면.. 안 되겠지? 연약한 살덩어리가 입속에서 흐물거리며 움직였고, 내 혀는 그 살덩이들을 끝끝내 잡고 잡히기를 반복했다. 마치 사탕을 머금고 있는 듯... 그 사탕을 뱉고 싶지 않았다. 영원히. 그의 가장 아래에서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그의 엉클어진 얼굴이었다. 미간을 잔뜩 찌푸려 눈썹의 산이 조금은 좁게 만들어져 있었고, 쳐진 눈꼬리는 더 잔주름을 만들었으며 입은 벌려져 있었다. 입안에서 사탕을 더 굴리고 싶었으나, 그가 내게서 빼앗아갔다.
"싸겠어요"
그의 말에 내려다본 단단함은 영롱하고 맑은 눈물을 머금고 울고 있었다. 마치 자신을 봐주지 않는 내 신세와도 같았다. 입안 가득 벅차게 껴안았다. 격하게 보듬어 움직였고, 곧이어 하얀 세상이 입속에 퍼졌다. 그의 낮고 낮은 숨소리가 들렸고, 늘 미지근한 그의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따뜻했다. 따뜻한 손에 눈물이 났다. 울컥하는 바람에 하얀 눈들이 목구멍으로 삼킬 수 없었다.
"뱉아요"
"도리도리"
"여기 뱉아요"
"도리도리"
울컥해서 삼켜지지 않는 거라고!!!!!! 그의 단점이 하나 더 있다. 눈치가 없다. 그것도 굉장히 말이다. 진즉에 알아봤어야 했다. 아주 진즉부터, 그에게만 한없이 허용적일 때부터 그는 내가 그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바보 개똥멍충이.
목구멍을 타고 기도로 넘어, 미지근한 하얀 눈이 몸속 깊은 곳에 내려앉았다. 그러고 그에게 말갛게 웃어 보였다. 그제야 휴지를 건네는 손을 거두었고, 그도 예쁘게 따라 웃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웃음도 가져오고 싶었다. 너무나 탐났거든. 나만 보고 싶었거든...
엉망이 된 내 머리를 정리해 주는 그의 손길이 너무나 좋았다. 머리카락을 만져주는 걸 원래 좋아했는데, 그가 만져주니 더 좋았다. 좋아하는 걸 사랑하는 사람이 해준다는 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일이 되어버리니까.
여느 때와 같이 나의 목도리를 둘러주는 손길에 주체할 수 없이 웃음이 새어 나왔지만, 숨기지 않았다. 아니, 숨길 수 없었다. 정확하게는 숨겨지지가 않았다. 그런데, 그는 다 아는 듯했다. 사실 이전부터, 그는 왜인지 내 마음을 다 아는 듯 보였다.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왠지 그가 다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더 숨길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냥 더 사랑하기로 했다.
사무실에 있던 동그란 구멍들은 더 이상 무섭지 않았고, 엘리베이터도 그와 있으면 아무렇지 않았으며, 그를 보러 가는 더러운 공간마저 결벽증이 사라진 것처럼 아무렇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사랑이 없어 마음의 병을 앓았던 것이었고, 그 병은 곧 그를 사랑하지 않는 순간 다시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은 괜찮아졌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도, 해서는 안 되는 사랑도 아무리 도망가고 외면하고, 사랑하지 않으려 노력해도 그럼에도 그 사랑도 피할 수 없다면, 여전히 사랑이라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사랑임이 분명하다. 운명인 것이다. 윤리와 규범보다 사랑을 선택하는 것은 그건 진정한 용기다. 나는 용기가 없어 그에게 고백하지 못했던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가 내 사랑을 받게 된다면 그건 분명 무해한 사랑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누구도 다치지 않을 해가 되지 않을 사랑말이다.
-엘리베이터 안
"괜찮아요?"
"끄덕끄덕"
나를 살피는 따뜻한 목소리는 그 어느 감미로운 음악보다도 더 감미로웠다. 눈빛도 아까 회의실과는 달랐다. 다시 바른생활 사나이로 돌아왔으며, 그 끝에는 정말 날 걱정하는 눈빛이 맺혀있었다. 이러니 안 헷갈릴 수가 있겠냐고요.
'날 사랑하는 건가? 착각하지마, 미안하댔잖아.. 그럼 아닌 거야'
"1층입니다"
"저.. 편집장님, 궁금한 게 있어요"
내 물음에 그는 날 보며 웃었다. 긍정의 의미다.
"과장님, 비 좋아하세요?
하나 더 있어요. 저 혹시 부담스러우세요?"
-The end.
<남주가 비를 좋아하는지, 여주를 부담스러워하는지는 조금 더 스토리를 구상해서 쓰도록 하겠습니다. 방송을 쉬겠다는 말이, 글을 쉬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글 쓰는 작가이기는 하나, 두 아이 키우는 엄마이고, 주부며, 워킹맘입니다. 그리고 지금 방학기간이라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요. 핑계 같이 들리겠지만, 어머님이랑 냉이도 캐러 가야 하고 바쁩니다. 아내이기도 하고, 며느리이기도 하고, 딸이기도 해요. 재촉하지 마세요!!!! 또 잠수 타고 숨어버릴 겁니다. 절대 협박은 아닙니다^^
기다리십시오.>
모두 안온한 주말 보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