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1-210 어지러운 밤

사람의 감정에도,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그 기간이 되면 당신이 정말 한순간에 미워 보이는 걸까. 사랑을 해본 적이 없어 유통기한에 대한 두려움이 문득 훅하고 밀려들어왔다. 당신이 빠져나간 내 삶은 와르르 허물어질 거 같은 막연함에 상상하기도 무서운데... 그 기간이 오면 정말 당신을 좋아하는 마음이 한순간에 사라질까. 이게 가능한 일일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터질 거 같고, 보고 있으면 두근거리는데, 진심으로 좋아하고 진심으로 사랑하는데 갑자기 사랑의 유통기한이 다 되어 당신이 못나 보이고 사랑스럽지 않을까. 그게 진정 가능한 일일까? 하루아침에? 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결국 울컥 울음이 차올랐다. 나에게서 당신을 지워내는 일이 가당키나 할까. 지울 수 있을까. 가식 따윈 한 방울도 섞이지 않는 오로지 순수한 사랑을 했는데 그런 당신을 내가 배신할 수 있을까. 사랑의 유통기한, 그까짓 거 한테? 당신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때가 오기는 할까. 내게 당신을 사랑 아닌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날이 올까.
당신은 나보다 더 어른이니깐 답을 알고 있지 않을까. 물어보고 싶다. 그런데 뭐라 하면서... 물어야 하지?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윽.. 생각만 해도 긴장돼. 당신한테 가는 한걸음마다 내게는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결코 당신은 모르겠지... 보고 싶어, 당신.
매번 당신의 웃는 모습을 보는 건 아니지만, 난 당신이 웃을 때 그렇게 좋더라. 어느 정도 낮은 감이 있는 웃음소리도 좋고, 눈꼬리를 한없이 늘어뜨려 주름진 모습도 너무 예쁘고 좋아. 당신의 웃는 모습을 보고, 웃음소리를 듣고 있으면 덩달아 입꼬리가 올라가 곤란할 때가 있다. 사실 당신이 무엇이든 하든 간에 귀여워 보인다. 이제 하다 하다 당신의 숨 쉬는 것도 귀여워 보여 큰일이다. 그냥 당신의 존재만으로 마냥 사랑스럽다. 당신은 그저 내 사랑 안에서 모든 안 좋은 것들은 다 잊고서 새로이 안온함으로 내가 채워주고 싶다.
당신의 슬픔을 내가 덮어줄 수 없어서 안타깝다.
당신을 안아줄 수 없어 아쉽다.
내가 당신의 인생에 작은 행운이기를 바라며 정작 그럴 수 없다는 현실이 야속하다. 발버둥 쳐서라도 내 지난 과거와 내가 지켜야 할 것들을 모두 까맣고 잊고 싶을 만큼 당신이 좋다. 그럴 순 없으니.....
나는 그저 당신한테 쭈욱 상냥하고 애틋하고 싶다. 끝끝내 그는 알지 못하겠지. 현재 당신은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의 주인이라는 걸.
어쩌면, 당신이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란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나와 마음이 같다면 걷잡을 수 없을 테니깐....
보고 싶다.
이대로 내가 당신을 보러 가지 않으면....
나중에 시간이 흐른 뒤에 당신을 운명처럼 마주쳤으면 한다. 뻔하고 뻔한 흔한 삼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장소는 중고서점이면 좋을 듯하다. 황급히 맞닿은 시선을 떼지 않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마주쳤으면 좋겠다.
"가슴이 미어질 정도로 보고 싶었지만, 꾹 참아 냈어요. 저 잘했죠?"
그때 당신은 내게 뭐라고 해줄까. 잘했다고 칭찬해 줄까? 그 대답이 뭐든 내게 웃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그럼 다시 당장 당신을 보러 가게 될까 봐. 다시 글을 쓰게 될까 봐. 다시 사랑을 쓰게 될까 봐.
아무리 수백 번 기억을 뒤집어 보아도, 당신과 나는 필연적이었다고 내게 말해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