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204 그 여자

호호아줌마v 2025. 1. 5. 00:46




8년 전,
여자는 경험이 없다고 말했고,
남자는 괜찮다고 말했다.
여자는 결혼하고 첫날밤을 보내는 것이 어떠냐고 말했고, 남자는 싫다고 했다. 남자는 둘이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한 거라며 둘만의 첫날밤은 결혼 전이나 결혼 후나 별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자는 싫다고 말했다.
남자는 싫다는 여자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신혼여행에서,
여자는 아플 거 같아 무섭다고 말했고,
남자는 아프지 않다고 거짓말을 했다. 결국, 신혼여행은 눈물바람이 되었다. 남자는 억지로 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여자에 대한 배려였다. 술을 마시고도 키스에서 멈출 수 있었던 건, 결혼이라는 제도였다. 언제든 어디서나 할 수 있는 합법적인 서류상의 관계.


신혼집에서,
여자는 결혼 전 사무실 언니들과 친구들에게서 성교육을 받아왔다고 고백 후 이제는 결심이 섰다고 말했다. 남자는 웃었다.
샤워를 마치고 남자는 불을 껐다. 그러나 여자는 어두운 건 무섭다고 말했다. LED의 밝은 조명 아래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여자는 어색하고 쑥스러웠고 부끄러워했다. 남자는 익숙하게 입술을 포개어 공기의 흡입력으로 모든 것을 말랑말랑 순조롭게 만들었다. 남자는 자연스럽게 몸에 걸친 것을 벗었고, 조심스럽게 여자의 몸을 걸친 것도 벗겼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는 일이 너무 생소하고, 민망했다. 뿐만 아니라 성인 남자의 알몸을 실제로 처음 본 여자는 기분이 그랬다.
남자의 손이 여자의 몸을 쓰다듬으면, 여자의 피부 감각이 살아났다. 남자는 몸이 하나가 되기 위해 욕망이 이끄는 대로 움직였고, 여자는 남자가 이끄는 대로 움직임에 한 발자국 떨어져 따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어설픈 것보다 더 걱정인 건 경험해보지 못한 통증을 앞에 둔 두려움이었다. 여자는 다음에 하자고 말했지만, 남자는 들리지 않았다. 그때부터 남자의 부드러운 손이 조금은 힘이 들어가졌다. 여자의 몸을 쿡쿡 치는 것을 느꼈고, 그것을 온몸으로 막고 있다는 걸 알았다. 여자는 감각으로 알았다. 진입을 허용하지 않는 문의 두터움을. 남자도 알았을 것이다. 힘들게 비집고 들어오는 남자의 몸이 느껴졌다. 여자는 소리를 질렀다. 찢어지는 느낌이 들면서 칼에 베인 듯한 아픔이 한 번에 쏠리면서 몰려왔다. 눈앞이 캄캄했다. 막혔던 문이 열린 후 남자의 몸은 움직였다. 여자는 아프기만 했다. 첫날밤의 황홀함 따위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었다. 아파 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고, 눈물도 나왔다. 남자가 움직임을 멈췄고 여자는 끝났음을 깨닫고 몸을 웅크리고 펑펑 울었다. 남자의 몸에도 여자의 다리 사이에도 침대에도 선홍색 피가 물들어 있었다. 남자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여자는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아랫배에 느껴지는 극심한 통증에 웅크린 몸을 더 말아 웅크리고선 울기만 했다. 남자는 여자를 안아서 앉혔고, 앉는 동시에 피가 꿀렁 다리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그렇게 부랴부랴 산부인과에 갔다.
여자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자와의 관계를 묻는 간호사에 남자친구라고 대답하고, 보호자로 여자의 부모님 연락처를 적었다. 병원에서 여자는 통증에 울기만 했다.

"환자분, 같이 오신 분 누구예요?"
"ㅠㅠㅠㅠㅠㅠㅠ"
"남자친구예요?"
"끄덕끄덕"
"진료 의자에 누우세요"
"도리도리"
"출혈의 원인을 알아야 치료를 합니다"

여자 간호사 한 명이 여자를 부축했고 치마로 갈아입게 하고 진료 의자에 눕혔다.

"여자 의사 선생님은 안 계세요?"

여자가 겨우 말했지만, 당직 의사 선생님은 남자 선생님뿐이라고 대답했다. 여자는 의자에 다리를 벌리고 누워 눈을 감아버렸다. 치욕스러웠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여자는 그 부위에 누군가 진입한 것도, 그 부위를 눈으로 타인이 확인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의사가 뭐라 뭐라 물었지만, 여자는 들리지 않았고 울기만 했다. 진료가 끝나고 처치를 하고 뻐근하고 불편한 골반과 허리에 손을 올리고 엉기적 걸어 나왔다.
조용한 새벽 병원에 쫙ㅡ하는 소리가 퍼졌다.
남자는 어떤 남자에게 뺨을 맞고 있었다.
여자의 아버지이자, 남자의 장인어른이었다.

그렇게 여자는 첫날밤의 아픔의 통증으로,
남자도 어마어마한 통증으로 서로의 첫날밤이 오래 기억되었다.

그렇게 부부가 되는 큰 신고식을 치렀다.
남자는 여자에게 평생 사랑하고 지켜주겠다 말했고,
여자는 변하지 말라 대답했다.
약속대로 남자는 여자를 사랑했고, 여자도 남자를 사랑했다. 그 둘은 부부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으로 행복해했다.
결혼이라는 계약관계가 가끔 짐이 되어 버거웠지만, 나름 그 속에서 행복했다. 그렇게 둘이 사는 세상에서, 셋이 되고, 넷이 되어 그들만의 세상에서 살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그 둘은 각각 아저씨, 아줌마가 되어 중년을 향해 갔고, 서로 같은 미래를 바라보며, 행복하고 화목하게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번외,
그러나 무언가를 빠진 듯 공허함은 누구나 갖고 사는 것인지 여자는 늘 궁금했고, 무뚝뚝한 남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엄마로서 삶이 어떠한지, 아내로서 삶이 어떠한지, 며느리로서의 삶이 어떠한지, 딸로서의 삶이 어떠한지 잘하고 있는지 의심했으며, 동시에 여자로서의 삶이 끝남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그 여자가 사는 세상에 여자만 빠진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새드엔딩인가, 해피엔딩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