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203 갈구하지 않아

호호아줌마v 2025. 1. 4. 03:44


당신에 대한 알 수 없는 본능적인 끌림을 거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로 인해 당신의 사랑을, 애정을, 관심을 아니지, 당신의 모든 것을 갈구하는 내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밀물처럼 밀려오는 설렘을 어둠 속에서 기다리게 되었다. 살아가야만 하는 삶에 또 다른 이유가 생긴 듯했다. 억압되어 있던, 억눌려 살아왔던 마음에 사랑이 샘 솟아난 것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늦었지만, 이건 분명 사랑이다. 문제는 사랑의 시작점이 잘못되었다는 것. 그걸 인정하지 않는 순간, 그때부터 사랑이 아니라 욕심일 뿐이다. 원래 다른 여자가 있는 남자를 사랑한 쪽은 나니깐.... 사랑을 하면서 사랑을 의식하면 사랑이 왜곡된다. 사랑한다는 걸 잊어야 순수한 사랑이 되는 것이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잔인해지는 감정들에 몸서리 쳐진다.


  그의 입술이 나의 입술로 포개졌다.
부끄럽지도 않았고, 당황하지도 않았으며 미안하지도 않았다.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입술에 닿는 감각이 좋았다. 덕분에 미안함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고, 설렘과 두근거림으로 휘감았으며 더 더 더 깊이 그를 갈망하는 육체덩어리가 되어갔다.
키스, 상대의 입에 자기 입을 맞추는 행위.
그 하나로 몸에 퍼지는 아련함이, 코끝에 맴도는 체취가, 입안에 퍼지는 온도가 너무도 좋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을 전부 다 하고 싶었다. 그와 함께 하는 시간에는 나와 같기를.... 나와 같은 마음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그가 내게 하는 행동이 사랑이 아님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내가 하고 있는 사랑과 그가 날 대하는 방식이 다르다.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는 사랑이고, 그는 연민과 동정 그 사이 어딘가쯤이겠지. 나는 나의 방식대로 사랑을 할 것이다. 이 남자는 받는 사랑이 될 것이고, 나는 주는 사랑이 될 것이다. 나는 이 남자를 몹시도 사랑한다. 나의 영혼을 이 남자에게 주고도 아깝지 않은 사람이다.
  그러나, 이제는 내 사랑이 멈춰야 함도 단단히, 그것도 아주 야무지게 알고 있다. 아직도 그를 여전히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는, 너무도 정확하게 정해져 있는 결말을 알고 있었다. 그를 조금씩 덜어내야 한다. 나에게서 덜어내야만 한다.
매번 글이 비슷한 맥락이다.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큼 커졌는지에 대해 써내려가다가 끝에는 결국 그 사랑을 멈춰야 한다는 걸 나에게 상키시키는..  짧디 짧은 글을 쓰면서 온탕과 냉탕의 기분에 정신을 차릴 새가 없다. 사실 이제는 내 사랑을 그만 쓰고 싶다. 그럼에도 오늘도 내일도 그 뒷날도 나는 쓰고 있을 것이 뻔하다. 내 사랑은 글로만 표현되어지고, 글로만 써야 사랑임을 알 수 있으니깐...

#살앙, 사랑
뻔뻔하고 번지르르한 말, 사랑. 그걸 지금 내가 하는 중이다.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했던 날들은 인생에서 한없이 다채롭고 선명하게 빛나고 있다. 그 사람의 눈빛, 그 사람의 온기, 그 사람의 음성, 그 사람의 손길까지 모든 게 다 나에게 특별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모든 것이 내 삶 속에 깃들어 있다. 그가 했던 모든 말은 나를 겨냥한 말이고, 그가 했던 모든 행동은 나에게 설렘이었다. 그 번지르르하고 뻔뻔한 사랑에도 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바로 그리움이라는 친구인데, 아쉬움과 비슷한 말 같지만 또 다르다. 입 밖으로 차마 그를 그립다, 보고 싶다를 낼 수 없어 마음으로 불러보는 이름이 바로 그리움이라는 거다. 사랑을 하면 그리움은 세트마냥 무조건 따라다닌다. 그런데 이 그리움은 생각보다 쿨하지 못하고 은근히 뒤끝이 있다. 사랑을 시작한 사람에게 거머리 마냥 딱 달라붙어서 조금씩 피를 빨아먹고 상대를 말려 죽이는 것. 그건 당해본 사람만 알 것이다. 속수무책이다. 당해낼 자가 없다. 만날 수 없는 그를 그리워하는 슬픔의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거든. 어른 남자, 그가 너무도 그립다.
너무 보고 싶다.


#마트

"손 잡아줘"
"싫어, 니 손 너무 차"
"데워놨으니깐 잡아줘"
"차갑구만!!"
"그냥 잡아주면 안 돼???!!!!!!!!"

나는 첫 남자에게 뿔이 단단히 났다.
가짜 그를 마주치기 싫어 되도록 오후에는 가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엄마 대신 심부름을 다녀와야 했다. 가기 싫다던 첫 남자를 강제로 끌고 마트로 향하는 길이었다. 사실, 굳이 손을 잡고 갈 필요는 없었는데... 왜 그때 손을 잡고 가자고 했는지 잘 모르겠다. 가짜 그에게 왜 손 잡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을까. 아무튼 그렇게 티격태격 거리다 마트에 도착했고, 좁지도 그렇다고 넓지도 않은 마트에서 가짜 그와 마주쳤다. 티격태격하는 사이 가짜 그는 사라졌고, 메모장을 보며 장을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장을 다 볼 동안 가짜 그를 만나는 일은 없었다. 계산을 하고, 나가는 데 고객센터 앞에서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오빠 인사해. 저번에 얘기했지? 참기름 깨트렸을 때 치료해 주셨던 직원분이셔"
"아, 그 가짜 남주???"
"좀 ㅠㅠ"
"아, 네 이야기 들었어요. 감사했습니다"
"제 일입니다. 저기, 이거 챙겨가세요"

웃는 모습이 선하고 예뻤었는데, 오늘은 한 번도 웃지 않았다. 그리고 내게 엄마 에코백을 들어 보였다.

"아... 제가 흘렸나 보네요??"
"아니오. 그쪽이 버리고 튀셨는데요??"
날 보며 첫 남자가, "어?? 왜?? 왜 튀었는데?"
"아... 그날 김장하는 날, 맥주 먹고 신나서 마트 오다가 창피해서 버려두고 왔지"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ㅠㅠ 너무 민망하고 뻘쭘해서 또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첫 남자가 건네받고,  짤막하게 인사를 했다.
한 손으로 허리를 감싸 멈춰있는 나를 돌려세웠다. 그렇게 가짜 그에게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뒤돌아 마트를 나왔다.

엄마집에 다와갈 때쯤 긴장이 풀렸고, 나는 물었다.

"오빠, 아까 그 총각 잘 생겼지?"
"누구? 직원?"
"응"
"잘생기면 뭐 해, 엄청 싹수가 없더만"
"아냐, 원래 친절해. 오늘은 피곤한 일이 많았나봐"
"니가 어떻게 알아?"
"나 피난다고 치료해 줄 만큼 친절한 사람이니까"
"안경 새로 맞춰야겠네, 내가 더 잘 생겼구만"
"우와, 나 얼마 전에 새로 맞춘 거야!!!"
"그런데도 그래?"
"객관적으로 오빠보다 천배, 만 배는 잘 생겼어"
"야이!!!!"

나눠들던 짐을 첫 남자에게 몰아주고 어깨를 세게 한 대 치고 달렸다... 뒤에서 고함소리가 들렸지만 개의치 않고 달려갔다. 아마 잡히면 꿀밤이든 딱밤이든 맞았겠지만, 나는 빨랐고 첫 남자는 느렸다.
메롱이다.
소설 속만큼은 첫 남자보단 나의 어른남자가 더 여주랑 가깝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