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197 한단지몽의 여운

호호아줌마v 2024. 12. 20. 20:13


"참아요, 편집장님!"
"못 참아요"


온전한 모습으로 온몸을 껴안았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아는 바가 없지만, 부연 설명이나 대화 따윈 필요 없었다. 오로지 서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그뿐이었다. 아무 말 없이도 마음이 그에게로 흘러갔다.

"5분만 기다리고 있어요. 금방 내려갈게요"

그와 함께 하는 시간, 그 모든 시간이 처음 경험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떨렸나, 사랑해서 떨리는 건가, 흥분으로 인한 떨림인가. 그를 기다리는 시간이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마치 퇴근하는 서방을 기다리는 것처럼. 그는 채 5분도 되지 않아서 내 눈앞에 나타났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게 이렇게 행복하고 벅찬 일인지 처음 경험했다. 그는 과연 악의 구렁텅이에서 구원할 구원자일까 아니면 악의 구렁텅이에 빠뜨릴 사람일까. 내게 오는 발걸음이 바빠 보였다. 혹여 기다리고 있을 내가 신경 쓰였을 그의 배려인 듯싶었다. 배려를 알아챘을 때 또 하나의 의문이 생겼다. 어느 누구에게나 다 똑같이 해당되는 배려일까 아니면 나라서, 나였기에 내가 기다리고 있어서 바삐 서둘러 온 것일까. 그게 뭐가 됐든 내게 온 그가 마냥, 정말 마냥 좋았다. 다른 표현이 무색할 만큼 그가 내게 왔다는 사실하나만으로도 내 두근거림은 곱절이 되어 뛰고 있었다.

  신발부터 벗을까.. 옷부터 벗어야 할까... 뭐부터 해야 하나.. 어색하지만 행복한 고민을 하던 차에 그를 쳐다봤고 어둠 속에 내 눈에 들어온 건, 어렴풋이 보이는 그의 어색하고 수줍은 미소였다. 그는 유순하고 여유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 미소를 품고 있는 입술이 굉장히 섹시해 보였다. 이끌리듯 입술로 향해 다가가 목을 끌어안고 그의 입안을 탐했다. 내게 그런 용기가 있었던가. 새삼 놀랬다. 그와 혀를 섞다가 그의 허벅지 위에 올라갔다. 본능이었다. 분명 나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민망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괜찮다.  개의치 않다. 어른 남자는 내가 아무리 야한 행동을 해도 놀라거나 동요하지 않고 이해해 줄 것 같은 연륜과 성숙함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어른 남자가 좋다. 그는 당황해하지 않았다. 매 순간이 서툰 나와는 다른 치명적인 매력이다.
그의 다리 위에 있음을 인지한 순간, 무겁죠라고 나는 물었고 그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내내 숨겨왔던 낮고 뜨거운 본능의 숨소리가 내 귓가에 파고들었다. 황홀했다. 키스로 시작된 순간부터 다음 순서 따위는 생각할 틈이 없었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으니깐. 누가 가르쳐준 적도 없지만, 내 몸이 먼저 움직였다.  내게 입술을 떼지 않고도 신발을 벗을 수 있는 능력이 있을 줄이야. 스타킹 위로 닿는 그의 미지근한 손길과 체온마저도 나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스타킹 위로 닿는 손 느낌이 무척이나 야했다. 그의 목을 껴안고 그에게 더 가까이, 더 세게 안을수록 바지 위로 도드라지게 느껴지는 단단함으로 내게 더한 흥분을 안겨주었다. 마치 날 반기러 두발 벗고 마중 나온 것처럼 설레었다. 이미 내 몸은 질척이기 시작했고, 그를 향한 마음도 더 질척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의 뜨겁고 단단한 단단함으로, 그는 스타킹 위로 젖음으로 서로를 금방 쉽게 타오르게 만들었다. 혀를 섞고 있으면서 내 손은 그다음 입속으로 집어삼킬 곳을 물색하고 있었다. 윗옷 안에 넣은 내 손은 금방 목적지에 도착했고, 거기서도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게서 떨어질 줄 모르는 내 입은 그의 상체를 걷어올리고서야 입술에서 떨어졌다. 혀끝에 닿는 그의 가슴은 알싸한 치약맛이 났다. 입술을 맞대어 서로의 몸을 탐하는 행위만으로도 나를 극에 달하게 했지만, 가깝게 붙어있는 몸에 틈을 주어 내 손은 그의 바지 사이를 비집고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를 손아귀로 감싸며 쓰다듬었다. 내 심장만큼 뜨거웠으며 그를 사랑하는 만큼 뜨거운 화염을 끌어안은 것처럼 욕망으로 가득 차있었다.
몸에 걸치고 있는 옷들이 거추장스러운 순간이었다. 허벅지에서 내려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벗었다. 그의 낮은 아래에서 그를 깊게 빨아들여 벌어진 입술의 틈 사이도 놓치기 싫어 지독하게도 그를 노렸다. 한 순간도 그와의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으니까. 더 낮은 곳에서 흐물거리는 살덩이를 입안 가득 머금고 끈적이는 혀와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기엔 협소했다. 거추장스러운 바지와 스타킹은 아무렇게 벗어버리고 원래 내 자리로 돌아갔다. 지금 이 순간, 내 원래자리는 그의 다리 위였다. 맨살에 몸이 닿자 어른 남자의 몸은 더 빳빳하게 세워졌다. 부드럽게 벌린 사이, 그의 양손이 내 엉덩이를 잡았다. 비로소 나는 그와 하나가 되었다. 그가 나의 세상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내 세상으로 그를 데려왔다.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촉촉이 배어 나와 그와 나를 적셨고, 아래에서 느껴지는 강한 자극에 심장은 비정상적으로 빨리 뛰기 시작했다. 빳빳한 그가 깊숙이 들어왔다. 그의 숨소리와 내 숨소리는 누구의 것인지 모른 채 들숨과 날숨으로 내뱉어졌다. 이대로 시간이 멈추어도 좋겠다는 말을 뼈저리게 공감한 시간이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여유 있었고 부드러움이 비추고 있었다. 반면에 나는 많이 일그러져있을 텐데....

"편집장님 변태예요?"
"아뇨"
"너무.. 간지러워요"

간질거리는 이 기분을 어쩌질 못하겠어서,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간지러움에 그에게 물었다. 그는 분명, 바람둥이가 맞는 듯했다. 적어도 나보다는 경험이 많은 남자였다. 하긴 연세가 많으니깐... 그래도 바람둥이는 확실한 듯싶다. 그가 진짜 변태인지도 모른다.

말랑거리는 그의 귓볼은 뜨뜻미지근했다. 입안에 있으면 내 체온인지 그의 체온인지 헷갈릴 만큼 비슷한 온도였다. 나는 다리를 세워 움직이기 시작했고, 견딜 수 없는 자극에 그를 꽈악 안았다. 그의 타액이 내 입가에 흘러넘쳤다. 그때 내 눈은 맑고 투명했으리라 짐작한다. 오직 본능에만 나오는 광채였을 것이다. 처음 느낀 기분이었다.

"쌀 거 같은데"
"안돼, 참아요."
"그럼 움직이지 말아요"


움직임을 멈췄다. 그제서야 어둠에 익숙한 내 두 눈은 그가 조금은 잘 보이는 듯했다. 서로의 들숨과 날숨으로 공간을 빠르게 채웠다. 섹시한 표정의 얼굴이었다. 입은 숨 가쁜 들숨과 날숨으로 조금 벌려있는, 그토록 보고 싶었던 얼굴. 나도 모르게 내 양손은 그의 얼굴을 감쌌고, 편집장님, 인디언 보조개 있어요? 물었다. 그러나 그는 그게 뭔지 모른다 대답했다. 보조개를 찾을 시간도 없이 그가 다시 허리를 감싸 쥐었다. 너무 깊숙하게 들어와있었다. 그를 움켜쥐고 뼈가 으스러지도록 완벽히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리듬을 같이 타기 시작했다.

"쌀 거 같아요"
"안 돼요! 참아봐요"
"못 참아요. 참는다고 참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늙어서 그런 거 아녜요? 그럼 누가 참아야 되는데요?"


내려다본 그가 티 없이 말갛게 웃고 있었다. 구김 없이 웃는 그가 무척이나 좋았다. 잘생겼다. 왜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바보 같은 질문에 그가 너무도 예쁘게 웃고 있었다. 내 질문은 그의 참을성과 자제력에 핀잔을 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단지 그와 하나 되어있는 시간이 오래 머물렀으면 하는 투정이었다.
이제 제법 내 몸도 그에게 적응한 듯싶었다. 완벽히 하나 됨을 뛰어넘어 더한 쾌락을 원했다. 조금 더 벅차게 그와 함께이기를 바랐다.

'세게 하고 싶어요. 그래도 돼요?'

라고 물어보던 참이었다. 결국 참아내지 못한, 참을성 없고, 자제력 없는 그는 참지 못했다.
반나체로 사랑이 끝난 후 차창은 온통 그와 나의 내뱉어진 습기로 가득 찼다.

닦은 자리에는 그의 타액과 나의 선홍빛 핏물이 물들어져 있었다. 그가 달라는 제스처에 혹시나 그가 보고 걱정할까 봐 피가 묻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팠냐고 내게 걱정하는 얼굴을 하고, 물음으로 답했다. 나는 다시 안 아팠다고 대답했다.

앞전에 검진할 때를 돌이켜보면, 건강상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첫 남자와는 다르게 조금 더 크고 깊이 내게 들어와서 생긴 상처의 흔적이겠지. 그와 사랑을 나눌 때는 벅참으로 잘 못 느끼지만, 끝난 후에는 아픔이 밀려온다. 그 아릿하고 유리한 통증으로 그와 함께 했다는 흔적이 내 몸에 새겨지고 그 기억은 다시금 나는 되새김질한다.
모든 것이 한단지몽이며, 남가일몽이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