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1-179 다른 이유

본능적으로 사람은 사랑하는 이와 하나가 되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 욕망을 빠르고 일시적으로 메울 수 있는 수단으로는 바로 키스와 관계뿐이다.
그전엔 모르고 살았다. 사랑이 처음이었기에 스킨십이 이토록 달콤한지를 알지 못했었다.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인 거라고 생각하련다. 나의 지난 과거를 통째로 부정하기 싫으니까.
이제껏 사랑한다 믿었던 자와의 키스는 더 이상 내게 달콤하지 않다. 그게 정확히는 뻔한 사람과 뻔한 레퍼토리의 키스에서 오는 지루함인지 아니면 권태기인지 둘 다 아니라면 어른 남자를 사랑하고부터였는지 정확하게 이렇다 할 이유를 명확하게 찾지 못하고 있다.
그와 부드러운 입술이 만나 맞닿는 마찰은 고압 전류보다 더 강한 자극으로 내게 다가온다. 떼어질 듯 다시 달라붙고, 딱 붙어있는 듯 하지만 서로의 깊숙한 곳을 찾아들어가게 한다. 더 즐겁게, 더 흥분되게, 더 궁금하게 더더더 나를 몰아세운다.
그와 하나가 되고 싶다. 마음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고, 몸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둘 다 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몸만 원하는 것이었으니, 어쩌면 서로의 필요조건이다....
이미 알고 있었다. 상처를 주는 듯해 애써 글자로 담아내길 꺼려했지만 막상 적어내고 나니 뭔가 더욱 짙은 슬픔으로 내게 돌아온다. 나와 같지 않은 상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고 싶어"
난 그와 사랑을 하고 싶어!
"넣고 싶어"
모두 내 것이었으면 해.
그에게 많이 하는 저 말들은 사실 누군가를 향해 뱉어본 적 없는 말임을 그는 알까.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낯간지러운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자신이 너무 낯설게 느껴진다. 지금 당장 그에게 저 말을 해보라고 하면 못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저 말을 내 입에서 나오게 만드는 사람으로 유일하다.
같이 있으면 갖고 싶고, 닿아 있으면 가질 수밖에 없게 만든다. 미치도록 가지고 싶다.
여기서 멈춰야 할 거 같은데 한 번만 더, 딱 한 번만 더, 진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와버리고 말았다. 처음부터 이미 그에게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일 지도 모른다. 이제 좀 그에게서 벗어나고 싶다. 몹시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버겁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를 향한 내 마음은 사랑 외엔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