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172 사랑 없는 사랑 할래요?

호호아줌마v 2024. 11. 27. 03:40


"조건은 완벽해, 근데 사랑하는 마음이 안 생겨"

약속되지 않은, 평일 점심시간에 친구들을 잠시 만나게 되었다. 평일 낮에는 진짜 오랜만이었고, 생얼이 아닌 취기가 전혀 없는 맨 정신의 모두 사회생활을 하는 모습으로 말이다. 낯설었다. 그리고 웃겼다. 잊고 있던 친구들 모습에. 친구들도 날 보고 그러하겠지? 그중 미혼인 친구가 소개팅으로 한 남자를 만났다고 해서 축하를 전했다. 그러고 그 친구는 고민을 털어놨다. 경제적인 조건은 만족하는데,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다는 것.

"사랑으로 살아도 헤어지는 판국에 사랑 없이 같이 살면 행복할까?"

다른 친구가 이야기했다.
나는 그 친구의 말에 바로 반문했다.

"사랑 없이 사니까 더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내 한마디에 다들 대꾸가 없었다. 그리고 기혼인 친구들이

"나도 선혜 말에 일정 부분 동의해"

"세상을 망치는 건 사랑이야. 놓지도, 가지지도 못해 슬픈 인간들이 괴로운 근본이 결국은 사랑이야. 그러니 차라리 사랑하지 않는 편이 꽤나 합리적일지도 몰라"

덧붙여 말하는 내 표정이 슬픈 얼굴이었나 보다.

"너 오빠랑 싸웠지?"
"아니??"
"아니긴 뭐가 아니고.  닌 얼굴에 다 티나"
"뭐가 티나?"
"너 지금 슬퍼"

나는 조소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그가 떠올려 버렸고, 동시에 첫 남자도 떠올랐다. 이 둘이 한꺼번에 내게 떠오른 적이 전에 없었다. 이 둘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인가. 아니면 둘 다 사랑인가.
친구의 말에 반은 맞는 말이니 구태여 변명하지 않았다.

"그냥 대충 만나서, 대충 살아. 사랑이 있어도 사랑이 없이도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아"

다른 친구가 말했다. '그래, 그게 맞는 말이다' 싶었다. 그리고 웃음이 났다. 지금의 나는 그렇게 살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살아지지 않는다. 그렇게 하고 싶은데 도무지 살아지지 않는다.  사랑을 몰랐을 땐 그게 가능했을 것이 분명 하나, 그를 사랑하고부턴 불가능해졌다. 세상 모든 이는 자꾸만 관계에 이름을 붙이려 한다. 구속하고 속박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관계를 맺으려 한다. 힘들게 관계를 맺어놓고 다신 안 볼 사이로 찢어지고 갈라서는 경우도 있고, 결혼이라는 제도가 꼼짝달싹도 못하게 발목을 잡으며 책임으로 평생을 살기도 한다.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사랑 없는 사랑을 해, 어차피 사랑은 다 허상이야"

내가 던진 한마디에,
작가다운 말이다, 나 다운 답이다, 사랑 없는 사랑 그건 어떻게 하는 건데 등등 한꺼번에 많은 질문이 내게 쏠렸다. 그리고 나는 덧붙였다.

"근데 애초에 인간은 허상을 좇는 생명체야. 허기를 좇아 음식을 먹고, 내일을 좇아 잠을 자고, 물욕을 좇아 물건을 사고, 사랑을 좇아 육체적인 사랑을 하는 거야"

"너 오빠랑 무슨 일 있지??"
"뭐래는 거야. 아무 일 없어. 일이 있을 게 뭐람??"
"야, **오빠한테 전화해 봐. 선혜 지금 이상해!"

그렇게 첫 남자와 내 친구들은 안부전화를 하고 해프닝은 일단락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친구한테 해주고 싶은 말을 한 게 아니었다. 그저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다. 온 마음을 다 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진심은 마음이 전달될 때 빛을 발하고, 소진할 때 좌절된다. 그를 힘껏 사랑하는 일은 마음이 닿지 못하면 전부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나는 그에게 무용지물이다. 내가 쓰고 있는 글에 스스로 상처를 받는다는 게 참 우스운 일이지만, 나는 지금 내 스스로에게 생채기를 내며 상처를 주고 있다. 그래야만 그리움에 잠 못 드는 나를 술 없이 지쳐 잠들게 할 수 있기에.
보고 싶어요, 당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