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1-157 퐁퐁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다.
나에게서 사랑이 퐁퐁 솟아오른다.
좀 더 정확하게는 내게서 사랑이 퐁퐁 튀어 오른다는 표현이 더 맞는 듯하다.
그런 날 위해 가을은 더 행복하라며 낙엽을 흔들어 낙엽눈을 내려준다. 내딛는 거리마다 낙엽눈은 흩날리며 발끝에 떨어져 소복이 쌓인다.
갈색 눈, 붉은색 눈, 노란색 눈, 연두색 눈.
온 세상이 알록달록 해졌다.
낙엽꽃이 내리고 있다.
예쁘다.

#사무실
"과장님, 오늘 민원 고객님 만나시러 가시죠?"
"응"
"태워드릴까요?"
"안 바빠요? 감사하지만 혼자 갈게요"
"#1-17 호감이었으면" 편에서 그 민원 고객이 내 전담으로 담당자가 변경되었다. 그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고객이다. 직접 보지 않고 그동안 몇 번의 통화로만 주고받았었다. 굉장히 계산적이고 꼼꼼하고 문의가 많아 회사 오너가 민원 고객으로 분류하고 내게 넘긴 것이다. 그 고객은 진상이 아니었다. 그저 매우 꼼꼼한 성격의 고객이었을 뿐. 오늘 처음 그 고객을 직접 만나는 날이다.
"안녕하세요. ***사무소 ***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저랑 그동안 통화하셨던 분 맞으세요?"
"에? 네! 목소리랑 얼굴이랑 안 어울리나 봐요?"
"아니, 아닙니다. 통화할 때 목소리가 젊으신데, 말투가 연륜이 좀 있어서 나이가 많으신 분이 나오실 줄 알았어요"
"아.... 어리진 않습니다"
"혹시 실례가 안 되시면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서른일곱입니다"
"동안이시네요"
"감사합니다. **씨도 나이에 비해 동안이십니다^^"
그의 이름과 비슷한 이름을 부르는 순간 묘한 기분이 사로 잡혔다. 그동안 어른 남자의 이름으로 부를 일이 전혀 없었으므로. 낯설고 묘한 기분에 웃음이 났다.
"자, 그럼 설명드릴게요. 노트북 켜주세요"
같이 화면을 보고 설명해야 할 이야기가 많아 마주 보고 앉은자리가 조금은 번거롭고 불편했다.
"제가 선혜씨 옆으로 가도 될까요?"
"아 네, 보기 불편하셨죠?"
"**씨가 많이 불편해 보이셔서요"
"아...."
나란히 앉아 화면을 보고 설명을 이어갔다. 30분쯤 걸렸으려나? 공적인 일은 끝났고, 노트북을 정리했다.
"아까 볼 때, 택시에서 내리시던데, 같이 식사하고 사무실에 태워다 드릴게요"
"아뇨. 저 선약이 있어요"
"그럼 사무실에 태워다 드릴게요. 저 때문에 일부러 여기까지 오셨는데...."
"혼자 가는 게 더 편해요"
"택시 타고 가실 거면 제 차로 가시죠? 택시랑 같지 않나요?"
"네.."
또 거절하지 못했다.
날 배려해서 제안하는 일이 내게는 불편하고 부담스러운데 상대방이 기분 나빠할까 봐 거절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낯선 차에 타고 말았다.
"주문한 차를 왜 입에도 안 대셨어요? 혹시 커피 안 좋아하세요?"
"아뇨 아뇨... 배 불러서요.."
"다음에는 다른 걸로 주문할게요. **씨 뭐 좋아하세요?"
"저... 마시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씹어먹는 거 좋아합니다 하하^^"
"네? 재미있으신 분이네요"
"**씨"
"네?"
"아닙니다"
"말씀하세요"
"이름이 이뻐서요"
고객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를 부르는 듯해서 기분 좋았다. 자꾸 웃음 났다.
"제 이름 엄청 흔한데요? 딱히 예쁘지도 않고"
안다. 알고 있다. 별로 안 이쁜 이름인걸.
그래도 그쪽이름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과 비슷해서 그쪽 이름까지 예뻐 보이는 거다.
직접 내 입으로 고객 이름을 부를 때 그를 부르는 듯한 비슷한 발음이 너무 좋다. 내 웃음에 사랑이 솟아나고 있다. 자꾸만 보고 싶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리워하다 나의 뇌가 그로 절여질 것만 같다. 그를 향해 퐁퐁 샘솟는 사랑으로 하늘로 솟아오르기도 하고, 현실로 돌아와 다시 땅으로 곤두박질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와 보냈던 시간을 곱씹으며 새어 나오는 웃음을 주워 담아본다. 내 마음이 커질수록 그의 마음도 궁금해진다. 그가 볼 땐 내 마음이 너무 경박스럽게 느껴질까 봐 티도 내지 못한다.
내 마음이 빨리 식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