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1-153 남겨진 것들

그와 나의 끝은 어떻게 될까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별것 없었다. 그냥 내 쪽에서 더 이상 그를 보지 않으면, 출근을 하지 않으면 끝날 일이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애틋하고 절절한 사랑에 대한 끝, 그 결말이 거창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별 볼 일 없이 끝날 결말을 예상하니 씁쓸하고 뭔가 억울하다.
사랑도 내가 먼저, 이별도 내가 먼저.
뭐 일방적인 사랑과 이별이지만, 그가 내 마음을 아는 이상, 내 사랑은 더 이상 짝사랑이 아니다. 사랑도 먼저 했지만, 이별 또한 내가 먼저 해야 된다. 나의 일방적인 사랑에 이별이라는 단어가 약간 가소롭긴 하지만, 이 단어를 대신할 다른 말을 찾지 못하겠다.
그와 나의 이별에서 그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게 있다. 그건, 내가 가진 그와의 추억을 그에게 버릴 것이다. 그를 평생 품고 살아야 할 날 위해 그 정도는 그가 떠안고 살길 바랬으면 한다. 그동안 온 마음을 다해 그를 사랑하고 너무 애를 쓰며 사랑한 내 마음에 아무것도 그는 줄 수 없는 현실의 대가라고 생각하고 떠안길 바란다. 어차피 이렇게 떠나야 하는 인연에 내가 너무 내 목숨처럼 아꼈나 보다. 그렇게 목숨같이 생각한 그를 떠나고 나는 잘 살 수 있을까. 떠날 수는 있을까. 보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지독한 고독으로 매일 나를 끝없이 괴롭히겠지. 뻔히 불 보듯 보이는 사랑을 결국 하고만 내가 짊어질 대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분명 나는 그를 절대 사랑하면 안 되는 거였다. 원하든 원치 안 든 그와 내가 써가는 이야기엔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그와의 추억을 모조리 담아서 강에 던져버리고 싶다. 이 마음은 그를 사랑한 걸 후회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니까 하지 말아야 할 사랑에 대한 짓눌린 무게라고 해두자.
정확히는 내 이기적인 욕망을 버리고 싶다. 그에게 허락도 구하지 않고 사랑하고 있으면서 그의 우선순위가 되기를 원했고, 그 제맛대로인 바람을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수없이 실망하고 무너져 내리곤 했다. 이 일방적인 관계를, 이 이기적인 욕망을 가위로 종이 자르듯이 싹둑 잘라내버리고 싶다.
11월이 싫다.
가을과 겨울 그 사이 어스름한 공기가 주는 애매한 계절의 씁쓸함이 코끝에 매달려있다. 가을인가 겨울인가.
그가 가을을 더 좋아하면 낙엽을 밟지 않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을 다할 것이다. 밟지 않을 것이다. 그게 내가 하는 사랑이 그에게 닿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사실 나는 11월을 싫어하지 않았다. 추위에 얼어붙은 몸은 서로를 끌어안고 온기를 나누며 될 거라 믿었고, 그의 추운 겨울을 밝혀주는 불빛으로 남을 수도 있겠다 싶었으니까. 꽤나 켜켜이 쌓인 감정이 오늘은 폭발하나 보다. 살도 뺀 거 같으니 그를 보러 가야겠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가면, 나올 때는 부푼 마음만을 채우고 오겠지. 생각하는 것보다 꽤 많이 사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