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140 비와 함께

호호아줌마v 2024. 11. 2. 09:38


  11월 첫날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하루종일 가을비가 내렸다. 나는 비를 좋아한다. 비를 몰고 오는 바람, 냄새, 습도부터 비가 내리는 모양, 소리, 촉감 그리고 비가 그치고 말갛게 뜬 해에 비가 마르는 모양까지. 비는 어디 하나 미운 곳이나 버릴 것이 없다. 그도 비를 좋아할까? 대부분 비를 싫어한다. 싫은 것보다는 귀찮다는 표현이 좀 더 맞는 거 같다. 비가 오면 장화를 신고, 우산을 챙기는 모든 일들이 번거롭지만, 나는 그 번거로움 마저 좋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비를 더 귀찮아하는 듯싶다. 그는 오래 사셨으니 조금 더 비를 귀찮아하고 싫어하겠지? 그를 만나면 꼭 물어보아야겠다.

'비 좋아하세요...??'

그가 비를 좋아한다고 대답하면 뛸 듯이 기쁠 것이고,
그가 비를 싫어한다고 대답해도 나는 너무 좋을 것이다.
비와 상관없이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으니깐....
잠은 잘 잤는지, 아침밥은 먹었는지, 출근은 잘했는지, 옷은 따뜻하게 입었는지,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그에게 궁금한 것들이 마구마구 떠오르지만, 억지로 삼켜내 본다.
억지로 삼켜내도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제일 궁금한 건 따로 있으니 말이다. 그는 내가 비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있다. 혹시나 내리는 비를 보고 날 떠올렸을까? 잠시라도 생각이 났으려나? 내가 걸어둔 저주가 그에게 닿았을까?
분명 아니겠지. 젠장. 빌어먹을.
어르신은 그냥 내리는 비가 귀찮고 번거롭고 습하고 춥다고만 여길 것이 분명하다. 나를 떠올리는 것도 깜빡깜빡할 만큼 늙으셨으니 헛된 희망으로 날 혹사 시키지 말자! 하, 문제는 그럼에도 나는 그가 너무 좋다.
  꽤 오랜 시간 잠을 자지 못해 결국 어제부터 약을 먹기 시작했다.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비가 오는 날 그와 같이 있었던 날들을 떠올렸다. 날씨가 어떻든 간에 그를 보는 것만으로 너무 좋은데 비가 많이 내리던 날에 사랑하는 어른 남자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미치도록 행복했었다. 달콤한 그의 목소리도, 날 보던 그의 예쁜 눈도, 조심스럽던 그의 숨소리 마저 놓칠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애틋했다. 그의 손은 한없이 부드러웠고, 그의 몸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체온까지 너무나 완벽했다. 그의 살결에 내 몸이 닿았을 때 매끄러운 촉감에 짜릿하기까지 했다. 꿈만 같았던 그날의 기억. 그가 너무 그립다. 그가 몹시도 그립다. 날 보던 눈도, 눈꼬리 쳐진 주름도 그의 부드러운 손도 그의 모든 것이 그립다. 그가 정말이지 많이 보고 싶다. 그가 내게 머물렀던 부드러운 손처럼 움직여보지만 그를 대신할 수 없었다.
그를 보러 가야겠다.
사무치는 그리움에 잠식되기 전에 그를 보러 가야겠다.




아마 그는 늙어서 내가 머릴 자른 지도 눈치 못 챌 수도 있다. 암만!!!! 그래, 그는 생각보다 많이 늙으셨으니 알아채지 못할 거다! 그냥 그를 보러 가야겠다.
보고 싶은 마음이 자꾸 커지면 내 일에 방해만 되기에 가는 수밖에 없겠다. 그냥 보러 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