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137 잠못드는 밤

호호아줌마v 2024. 10. 31. 04:54


  밤이 깊어만 가는데 잠들지 못한 이유는 이렇다 할 이유 없이 그가 몹시도 그리운 마음일 것이다. 바쁜 하루 중에서 무엇인가를 붙잡고 싶었기에 힘을 낼 수 있었다. 마치 그는 내게 어두운 방안에 환한 조명과도 같다. 이미 내 마음엔 그를 향한 가속도가 붙어버린 지 오래되었다. 가속도가 붙어버린 내 마음은 멈추려 해도 감속이 되지 않는다. 바쁜 일상 속에서 가끔은 별게 다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아침에 출근길에 즐거웠을지, 즐거웠다면 그게 어떤 이유에서인지, 점심은 뭘 먹었는지, 근무 외에 쉬는 시간에는 무얼 하는지, 오늘 하루가 힘들지는 않았는지,  어두컴컴한 퇴근길에 가로등이 발길 닿는 곳까지 비춰주는지, 24시간 중에 잠시라도 날 떠올렸는지... 멈추려 했던 마음의 틈 사이로 다시 비집고 들어와 버린 것이다. 별 걸 다 궁금해한다며 애써 마음을 다 잡고 다시 일에 집중하면, 다시 날 붙잡고 만다. 그의 손에 스쳐 지나가는 온기라던지, 그가 움직이면서 바람을 타고 느껴지는 살냄새라던지, 마주 한 얼굴에서 다가오는 그의 옅은 숨소리라던지 모든 것에는 내 마음이 담겨있는 나를 떠올린다. 마음이 하는 일은 이성의 영역을 벗어나는 일이라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자연히 마음이 그에게로만 흘러간다. 그래, 이것이 사랑이다. 나는 그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이 모양으로 그를 보러 갈려면 나는 얼마나 많은 용기를 끌어다 써야 할까. 날 보고 초딩 같다고 생각하겠지? 나잇값 못한다고 생각하겠지?
아니지, 그는 관심이 없을 것이 분명하다. 내가 그를 보러 가지 않아도 그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을 사람이다. 가든 말든 별 관심 없겠지. 자꾸 까먹게 되고 잊어버리게 된다. 혼자 하는 사랑임을 말이다.
한심해.
별거에 마음이 상하고 서운할 거면서 뭐 하러 짝사랑을 한 거야?
아참! 그는 내가 그를 좋아하는 마지막 날이라고 알고 있겠네. 홀가분해하려나, 아쉬워하려나. 그를 만나면 허락을 구해야 되려나? 아니면 핑계를 대야 하려나? 좋아하는 마음이 변할 때까지 기다려보겠다고, 좋아하는 마음을 그만두는 게 힘들다고... 그러니 혼자 좋아하겠다고 말하면 뭐라고 하려나. 근데 굳이 허락을 구해야 하나? 내 마음인데!!! 어렵다 정말.





#10월 31일 자정
매월 말일은 첫 남자와 사랑을 약속한 날이다.
약속을 위해 나는 빠르게 해야 할 일들을 속도를 내고 있었다. 거실에서 캔을 따는 소리가 들렸다. 본능적으로 벌떡 일어나서 거슬러 향했다.

"왜 마셔!! 마시지 마!"
"왜 ~~ 한 캔만 마실게. 일은 다 했어?"
"다 해가. 진짜 이것만 마셔야 해"
"빨리 하고 와"

마우스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프긴 싫었다. 통증을 잘 못 참는 편이기도 하지만, 같은 경험으로 인한 뻔한 고통을 미리 알고 기다리는 것만큼 공포는 없다고 본다. 더 이상 집중 못할게 불 보듯 뻔하여 노트북을 껐다.

"오빠, 나도 맥주 한 잔만"
"술도 못 마시면서 왜 자꾸 마실라그래"
"머리 길어지는데 맥주효모가 최고래. 너 때문이잖아!!!!"
"머리 예뻐. 잘 어울린다 했잖아"
"초딩 같다며!!!"
"어려 보인다는 거지. 진짜 잘 어울려"
"거짓말"

한잔만 마시겠다던 나는 결굴 두 잔을 마셨고, 나는 충분히 주량을 훌쩍 남기고 취기가 올랐다.

"오빠, 나 졸려"
"어? 벌써 취한 거야?"
"응"
"양치하고 올게. 기다려"
"응"

양치를 마치고 나온 그를 보고 나도 일어났다.
"나도 양치하고 올게"
"넌 됐어. 업혀"

업히는 걸 좋아하는 나를 위해 그가 업고 서재실로 향했다.

"사랑해 선혜야"

반사적으로 나온 사랑한다는 말을 본인이 내뱉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을까?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내 입술로 향하는 그의 입술. 거칠지 않았다.

"힘을 빼야 안 아파. 몸에 힘을 주니까 네가 아픈 거야"
"무서워ㅠ"
"안 아프게 할 테니까 힘 빼봐"
"뺐어"
"아니야 더 빼야 해"

비로소 약속했던 사랑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