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1-130 이것이 전부다

#헤어질 결심
이별은 누구나 겪어야 하는 스트레스 중 가장 큰 고통의 하나라고 한다. 이런 고통을 스스로 자처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헤어질 결심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도 내게는 처음 있는 일이며 처음 해보는 이별이다. 사실 이별은 내게도 경험한 바 있다. 예를 들어 돌아가신 할머니, 졸업 후 헤어진 선생님과 친구들, 반려견의 죽음 등등.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을 거둬야 하는 이별은 처음이다.
사람에게는 유혹에 지고 마는 성향을 갖고 있다. 나쁜 결과를 뻔히 예측하면서도 불속으로 뛰어들고 마는 그런 속성 말이다. 큰 상처를 입을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불빛의 화려한 유혹에 지고 만다. 그런 유혹에 못 이겨내면 결국은 끝내 헤어질 결심을 해야만 한다.
#하필 가을
흔하고 흔해빠진 첫사랑의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아니, 그냥 가을의 쓸쓸했던 추억을 더 쓸쓸하게 남기고 싶은 기억의 일부.
그를 처음 만난 건,
불타던 여름의 열기가 남아있지만 가을이 시작되는 초 가을이었다. 가을이 찾아오면 가을의 찬란한 색이 메우며 우리의 모든 감각을 자극한다. 가을의 색깔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서른 중 후반의 향수를 가진 나에게는 특히 더 깊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던 작년 가을이었다.
그를 처음 봤을 때부터 사랑이었다.
돌다리를 수천번을 두드려보고 겨우 건널 수 있는 나는 그에 대한 마음이 '사랑'임을 진즉에 알았어도 인정하기 싫었다.
'내가 왜 나에게 관심도 없는 사람한테 굳이 왜?'
'내가 뭐가 부족해서?'
받아들이기까지 내 마음을 최대한 사랑과 비슷한 감정으로 무마시키려 했다. 동경과 선망하는 감정으로.
날 설득하던 내가 처절하게 패배를 맛본 후, 결국은 혼자 몰래 사랑하는 짝사랑이 시작되었다. 혼자 하는 사랑이지만 그를 사랑하게 되어 너무나 행복했고 설레었다. 이성을 사랑하는 처음 있는 일이니 더욱더 남달랐다. 그는 나를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듯했다. 늘 나와 함께 했다. 그는 항상 나를 따라다녔다. 내 머릿속과 마음을 옮겨 다니며 그렇게 마음이 커져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나에게 여지를 준 건 바로 그였다. 그 여지를 준 그가 몹시도 갖고 싶어졌다. 욕망과 욕심으로 이성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던 그 벽을 허물고, 결국은 '짝'사랑이 사랑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그럴수록 상처는 오롯이 내 몫이었다. 불 보듯 뻔한 결말에 안일하게 생각했던 탓이었다. 날고뛰고 해 봤자 결론은 정해져 있어서 괜찮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내 생각이었다.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
자꾸 커지는 마음을 멈추기 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애초에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그를 여전히 사랑한다.
그를 사랑하지 않는 일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와는 위에 쓴 내용이 전부였으니까. 사랑에 빠지게 된 일, 사랑이 깊어지게 된 일 등등 이런 뻔한 레퍼토리 하나 없는 오롯이 대부분 내 혼자 한 사랑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를 여전히 좋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