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111 천연기념물

호호아줌마v 2024. 10. 14. 08:54



내 인생 통틀어 나는 사랑이 뭔지 몰랐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어른 남자 말고는 사랑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그와 함께 있을 때는 모든 게 단순하고 분명하다. 그와 함께 있을 때 그저 이야기하고, 웃고,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니까. 언젠가 한 번은 눈꼬리를 한없이 늘어뜨리고 웃는 그의 웃음을 보고 따라 같이 웃고 싶어졌다. 말갛게 웃는 저 웃음을 계속해서 보고 싶어졌다.
시간이 흘러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그와 나의 관계가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것을.
그러나 나는 사랑을 해보지 않아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
좋아하는 법도 모르겠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게 사랑하는 방법으로
옳은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냥 마냥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하는 거 외엔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일요일

진주는 지금 한참 남강유등축제가 진행 중이다.  
그걸 핑계로 진주에 놀러 온 말썽꾸러기 외삼촌 가족.

"이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곤충 맞다니깐!!"
"아니라고!! 다른 종이라니까. 내기할래?"
"그래, 넌 뭐 걸래?"
"이긴 사람이 진 사람 한 대 때리기 하자"
"좋아. 여자라고 안 봐준다"
"걱정 마 내가 이길 거니깐, 나도 삼촌이라고 안 봐줘"

그렇게 내기를 걸고,  검색했다. 내 말이 맞았다.
유리알락하늘소는 천연기념물이 아니었다.
삼촌은 본인이 내기에 졌다는 걸 알고 말을 돌리기 시작했다.

"진짜 천연기념물은 늘 가까이에 있지"
"어디에?"
"너 말이야 너"
"이 씨 그만해"
"*** 만나기 전에 천연기념물이었지"
"입 닫아!! 한마디만 더해"

내 나이 스무 살 중 후반쯤 처음 삼촌이 천연기념물이라고 불러서 좋은 의미인 줄 알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날 놀리는 말인걸 곧 알게 되었다.
평생 외박이라곤 해본 적 없고,  남자와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이 흔치 않아 그런 사람을 빗대어서 천연기념물이라 부르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강하셨고, 나는 강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동안 엄마아빠 그늘에서 사는 동안은 화초로 컸다. 그렇게 살다 보니 성인이 된 이후에도 나가서 노는 것보다는 집에서 책 읽거나 자기계발하는 게 더 편했고, 여행 가고 싶을 땐 부모님과 함께했었다. 처음 내가 상담을 받았을 무렵,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사실에 조금은 충격이었다. 그래서 20대 때 당연하게 누려야 할 것들을 적어보고 실천해 보기로 다짐했건만 단 하나도 실천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조금 많이 예민하고 겁이 많은 정도로만 생각했던 내가 불안과 강박 그리고 결벽증까지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뭐 딱히 외박을 안 해본 일이나 많이 놀지 못해 본 것에 대해 후회되지 않지만, 지금은 조금은 후회되는 일이 있다. 연애를 좀 해볼걸. 진짜 작가가 될 줄 알았으면 10대 때 풋풋한 사랑도 20대 때 뜨거운 사랑도 해봤으면 좋았을 텐데.... 30대 후반에 사랑이 올 줄 알았으면 미리 연습해 봤으면 지금이 수월했을 텐데 라는 생각 때문에 후회가 된다. 그리고 소설 작가가 사랑이 처음이라는 사실을 알면 누가 내 글을 읽고 싶겠는가. 그동안 나는 사랑을 쓴 게 아니라 사랑인 척하며 쥐어짜 낸 일을 한 거였다. 결국 나는 '사랑' 앞에서 가장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꼴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