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96 애초에 나는

호호아줌마v 2024. 10. 6. 03:09


추울 때 몸을 따뜻하게 해 줄 따뜻한 차가 생각나는 것처럼, 그가 힘든 순간에 생각나는 사람이 나였으면 한다. 갑자기 추워지는 날씨에 문득 그가 걱정이 된다. 여름에는 에어컨으로 손끝이 차갑고, 겨울에는 추운 날씨에 손끝이 차갑던 그. 내 기억에는 늘 미지근함과 차가움의 중간의 체온의 그였다. 그는 상체도 굉장히 차가웠었다. 그런 그를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안아주고 싶다. 내가 조금, 많이는 결코 아니다. 아주 조금 어른 남자보다 작아서 안아주는 모양새가 웃기긴 하겠지만, 그래도 안아주고 싶다. 좀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안고 싶다^^  그닥 나도 따뜻한 편이 아닌데 내 온기를 그에게 전해주고 싶다. 설마, 나이가 많으셔서 혈액순환 문제는 아니겠지?ㅠㅠ
그의 원래 체온이 궁금하다.


왜 그런 거 있잖아.
비가 오면 떠오르는 노래처럼,
어떤 장소에 가면 꼭 들려야 하는 것처럼,
어떤 냄새를 맡으면 떠오르는 추억처럼.
내 모든 순간에 그를 떠올리지만, 그의 모든 순간에도 내가 떠오르길 바라고 있다. 행복할 때나 기쁠 때는 내가 떠오르지 않아도 괜찮다. 그렇지만 외로울 때나 힘들 때는 꼭 내가 떠올라 그에게 위로가 되고 힘을 낼 수 있길 바란다. 처음, 애초에 그를 사랑하면서 바랬던 건 단지 이뿐이었다. 내 사랑이 그의 마음에 추억으로 남아 그가 힘들 때 외롭지 않게 따뜻한 응원이 되는 것.
점점 쌀쌀해져 추운 날에도 그의 하루는 온통 따뜻하기를.
마음을 어지럽히는 말들이 그를 휘저어도 그에게 가닿는 세상은 온전히 평온하기를.
버거운 하루에 몸도 마음도 한껏 지친 날, 퇴근길에는 온통 별이 빛나 아름답기를.
이 모든 힘든 순간에 날 꺼내서 날 그에게 머물게 한다면,
모든 순간 나는 그에게 맞닿아 있을 거니까^^
그에게 힘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다.
지금 나는 그를 보지 못한 기다림이 생각보다 길었고,
사랑하는 마음은 상상보다 더 깊어졌다.
너무 보고 싶다. 빈틈없이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나는 30년이 넘도록 살아가면서 '보고 싶다'라는 진정한 마음을 처음으로 느끼고 있는 중이다. 그 감정을 마주하고 나서야 그가 그립다는 게 어떤 것인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다음 주엔 그를 보러 갈 것이다. 당장에 보러 가고 싶지만, 더 빠진 살로 인해 그가 내 마지막 모습을 병자 같은 모습으로 남길 순 없기에. 너무 자지 못한 탓에 맑은 정신으로 그를 보지 못하기에 당장에 갈 수가 없다.
이번에 가면 피하지 말고 그의 눈동자를 보고 와야 한다. 마지막이니 눈동자의 변화가 없어도 상처는 받지 않을 거다. 그런데 눈동자의 변화가 나이랑 상관이 있으려나? 늙어서 반응이 없을 수도??? ㅠ 늙었다고 하면 또 아니라고 하겠지?  안되면 직접 물어보지 뭐... 나 불쌍하고 가여워서 그래서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다고 했냐고? 과연  물어볼 수 있을까. 분명 없겠지?
나 질척 거리는 여자로 오해하면 어떡해 ㅠㅠ 나 원래 좀 질척거리는 편인가? 모태솔로는 이럴 때 갑갑하다 진짜. 뭘 해봤어야 알지. 그가 나를 얼마나 어리숙하고 바보처럼 보일지 안 봐도 비디오다.
젠장. 빌어먹을. 썅.
이뿐만 아니라 한 번만 만나달라고 이야기도 해야 한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말이다. 꼭!! 그에게 마음을 쏟아 내지 않으면 안 될 거 같다. 왜 하필 그에게 가는 마음이 사랑인 걸까 ㅜㅜ 그 많고 많은 감정들 중에 왜 하필! ㅠㅠ
그것도 처음인 첫사랑이고 거기다 짝사랑에 게다가 외사랑까지. 그 사랑을 또 조금만 얄팍하게? 사랑하면 될 것을 왜 이렇게 목숨을 다해 절절하게 사랑을 했냔 말이다.
이런 내 사랑이 어른 남자 눈에는 장르가 코믹이겠지?ㅠ너무 싫다 ㅜ 진짜. 나 진짜 지지리 못난 사람이 결코 아닌데 자꾸 이 어르신한테만 서면 지지리 못난 사람이 되고 있다.
망할.
이왕 날것을 보여준 김에 욕도 같이 보거라 ㅜㅜ 몰라, 될 대로 돼라지. 어차피 두 번이면 안 볼 사인데 뭐 ㅜㅜ
나 이렇게 글 적고..  그를 보러 갈 용기는 생기긴 할까? 다음 주 보러 가겠다고 약속 잡을 용기는 있는 걸까.
아니 이렇게 보러 가는 것도 용기가 안 나면서 왜 사랑을 했냔 말이다 진짜. 내가 이렇게 무모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문제는 다 어른 남자가 문제다.
빌어먹을.
진짜 한 대 때리러 그를 보러 가긴 가야겠다.
한 대 맞아 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