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1-94 그리움도 독이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여름이 막 지나 선선한 날씨가 조금은 쌀쌀하게 느껴질 때에 나는 의례적으로 관행처럼 해오던 일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재질의 보드라운 이불세트를 꺼내 거실에 깔아 두고 샤워를 마친 보송보송하게 물기가 마른 몸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맨살에 닿는 부드러운 이불감촉과 내 피부가 만나 나를 촉각에서 오는 행복을 극에 달하게 한다. 나는 알몸으로 이불 안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을 읽는데 아직은 머릿속에 잡념이 많아 책 내용이 도저히 들어오지 않아 덮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문득, 그가 떠올라버렸다.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그리움이 흘러나오길래 재빨리 막아보려 했지만, 순식간에 머리끝까지 차올라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버렸다. 그는 내게 여전히 강력한 존재다. 그런 그를 여전히 나는 동경하고,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있다.
'사랑'은 참 복잡하고 어렵다. 꼴에 두 글자 밖에 안 되는 주제에 나를 이리도 못살게 괴롭히고 있으니 말이다.
설렜다가, 기뻤다가, 애틋했다가, 욕망에 사로 잡히게 했다가, 절망했다가, 원망했다가, 행복했다가, 포기했다가 등 온갖 감정을 줄줄이 엮어서 끌고 다닌다. 그중에 제일 문제는 그리움이다. 다른 감정은 한번 훅 올라오면 쉽사리 사라지기 마련인데 이놈의 그리움은 꼬리가 긴가 여기저기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농간에 오래 놀아날 경우 그리움의 흔적은 나를 집어삼킨다.
그런데 그 끈질긴 그리움의 해독제가 사랑이라니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맨살에 닿는 이불촉감이 그의 맨살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잠깐 깃든 생각으로 내 몸은 빠르게 그를 기억하고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온통 내 머릿속엔 그로 가득 찼다. 하다 하다 내 영혼과 육체까지 점령해 버린 그가 조금은 무섭게 느껴졌다. 내 몸에 닿는 이불감촉이 내 몸을 어지럽히고 간지럽힌다는 생각에 나는 그 생각을 뿌리치고 이불속에서 나올 수 있었다.
나는 그를 동경하고 선망하는 마음도 있다. 너무 좋아서 소중한 마음마저 사랑임이 틀림없다.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기에 꽃을 꺾어서 내 옆에 두는 것을 포기하고, 꽃이 피고 지고 하는 모습을 보는 걸로만 만족하기로 다짐한 일을 빨리 실행에 옮겨야 될 때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새장에 가둬서 나만 바라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새장을 열어 하늘을 마음껏 날아오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내가 하는 사랑에 그를 계속 욕심내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것이 사랑일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그만큼 나는 그를 많이 사랑하고 있다. 빨리 그를 보러 가야겠다. 너무너무너무너무 그가 보고 싶다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