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61 비가 되어

호호아줌마v 2024. 9. 18. 18:35



맑은 하늘이 갑자기 잔뜩 찡그리더니,
금방 그칠 것 같은 짧은 소낙비가 시작되었다.
아스팔트 위로 사정없이 내리꽂고
순식간에 마른 도로가 촉촉이 젖어들었다.
한낮 뜨거운 폭염을 시원하게 식혀주는
갑작스러운 비로 인해,
생각보다 많은 양의 비로 인해,
그가 몹시도 그리워졌다.

내 사랑이 그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
그를 향한 그리움이 비가 되어, 나를 떠올리기를.
그를 향한 짝사랑에 서러운 비가 되어 그를 찾아온 나를 알아주기를.
그를 향한 애달픈 사랑이 비바람이 되어 그를 찾아간 내 마음을 봐주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평소에도 그가 불쑥불쑥 느닷없이 나타나긴 하는데,
비가 오면 유독 더 그가 생각이 나고, 보고 싶다.
마치 비 오는 시간만큼은 그와 같은 시간 안에 있는 듯한 느낌에서 인가? 그와 함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를 향한 내 마음이 하필이면 사랑이다. 동경, 존경, 미움, 우정, 동정, 질투, 애정 등 이 수많은 감정 중 하필 사랑이다. 한껏 내리고 나면 끝인 비가 아니라 지독하고 처절하게 바닥을 향해 끊임없이 온 세상에 촉촉이 적시는 비 같은 마음으로 나는 그를 사랑한다.

맨 처음 그를 보았을 때, 부드러운 첫인상을 가진 그일지라도, 불안과 강박으로 모든 타인을 적군이라 생각하던 내가 그를 아군의 기지 안에 둔 일을 후회하고 있다. 어른 남자는 내 아지트에서 영원한 평화를 줄 것 같았지만, 이 아군은 내 기지 안에서 다른 영역까지 탐내고 있다. 이제는 아군인지 적군인지 모를 사내를 나의 기지 안에서 곧 내보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상처로 얼룩지게 될 내 기지를 나는 잘 지켜낼 수 있을런지 의문이다. 그를 내보내는 과정에서 그와 마주한 칼에 저항 없이 찔리고 말겠지. 만신창이가 되겠지만 아군인지 적군인지 헷갈리고 나서는 그를 쫓아내는 게 현명한 일이라고 본다.

끝이 곧 얼마 남지 않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만큼은 그를 많이 사랑하고
또 사랑해보려 한다.

비가 그치고 온 세상을 덮인 바닥이 곧 뜨거운 햇빛으로 바닥은 언제 그랬냐는 듯 비 온 흔적을 지우려 하지만,
나에게는 어림없다.
분명히 그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그 흔적들이 나를 괴롭히기도 행복하게도 슬프게도 한다.
오늘은 이 흔적들이 나를 슬프게 할 모양이다.
그가 너무도 보고 싶다.
내 마음을 글로 적어내는 게 쉽지 않다. 가당치 않는 일이다. 그를 향한 마음을 비를 기다리는 마음과도 비슷한 듯싶다.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흠뻑 맞으며 한달음에 그에게 달려가 말해버리고 싶다. 사랑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