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1-56 사랑의 열병

이별과 죽음은 같은 의미를 가진다.
이별 후에는 영영 볼 수도, 만질 수도, 들을 수도 없으니 죽음과도 같다고 본다. 그를 보러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는 건, 내 안에 나를 서서히 말려 죽이겠다는 말과도 같다.
작년 나의 가을은 사랑이 충만했다.
그를 향한 호감도 사랑이었고,
그를 향한 동경도 사랑이었고,
그를 향한 기다림도 사랑이었다.
그를 향한 모든 것이 모두 사랑이었다.
그리고 다시 가을이 나에게 왔다.
올해 나의 가을은 이별이다.
처음 하는 사랑이라 사랑을 사랑인 줄 아는데 오래 걸렸고, 사랑임을 알았을 땐 인정하기 어려운 현실의 벽에 모른 척했다. 마음껏 표현할 수 없어 후회의 날만 보내다 한번 글로 써진 이후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는 내 감정을 주체할 수 없게 되었다. 내 마음의 선을 넘지 말았어야 했다. 선을 지켰어야 했다.
선을 넘었다는 건, 위험한 일이지만 그래도 내가 넘은 선에서만큼은 그는 안전하다. 그를 향한 내 사랑은 무해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무해하다의 뜻은 해롭지 않다는 의미인데 무해하다는 몹시도 해롭지 않다고 해석할 수 있다.
나는 그에게 한없이 무해하다. 내가 하는 사랑이 그렇다. 무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야만 그를 더 볼 수 있으니깐. 선택의 여지는 나에게 없었다.
그를 그리워하며 열병에 시달리고 있는 내 안에
그가 살게 되면서부터 나는 하루하루 메말라 가고 있다. 첫사랑이면서 짝사랑인 내 사랑은 너무 크게, 너무 거대하게 나에게 다가왔고, 그 사랑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렇게 내가 하는 사랑에 피해자가 되어 말라가고 있다.
나는 어쩌면 사랑을 담기에는 부족한지도 모른다.
그를 향한 욕심을 품았기에 이런 열병을 겪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늘 날씨에 비가 잡혀있다.
내리는 비에 내 사랑을 담아 그에게 닿기를 바라본다.
그래서 비를 좋아하는 나를 한번만 떠올렸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