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1-54 에필로그

#금요일 낮
여자의 허벅지를 베개 삼아 누운 남자는 그녀가 읽어주는 소설을 눈을 감고 듣고 있다.
"첫 남자는 나고, 편집장은 누구야?"
"소설이니깐 가상인물이겠지?"
"그럼 편집장은 기혼이야? 돌싱? 아니면 이혼남?"
"몰라? 여주한테는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아"
"왜? 중요하지. 기혼이면 불륜이잖아"
"....."
남자는 허벅지에 바로 누워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왜 대답이 없어?"
"생각 중이야. 남주 기혼여부를 어떻게 정할지...
근데 기혼이든 이혼이든 뭐든 상관없어"
"화났어?"
퉁명하게 대답하는 여자의 대답에 남자는 다시 그녀를 보고 말했다.
"아니?"
"그럼 이 소설 줄거리랑 결말은 어찌 되는데?"
"여주가 혼자 편집장님을 몰래 짝사랑하다가 그 마음이 켜져서 고백하고 단념하고 이별을 맞이하는 새드엔딩. 그게 다야"
"여주는 첫 남자에게 돌아가고? 여주, 남주 둘 다 원래자리로 다 돌아가는 거야?"
"응"
"근데 왜 세드앤딩이야? 해피엔딩 아닌가"
여자는 분명 여주가 새드엔딩의 결말을 확신했지만, 모두 원래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걸 해피엔딩이라 칭하는 첫 남자의 생각에 여자의 마음은 또 한 번 크게 상처받았다. 겉으로 보이는 변화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지만, 여주의 속은 아마 썩어 문드러질 예정이 빤히 보이는 여자는 작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허벅지에 누워있던 남자는 고개를 돌려 허벅지에 입을 갖다 대고 허벅지 살을 힘껏 빨아들이려 했다.
"하지 마"
여자는 짜증 섞인 말로 말했고, 남자는 그런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키스마크를 만드는 이유가 뭐야?"
여자는 퉁명스럽게 물었고, 남자는 담백하게 대답했다.
"나만 만들 수 있는 거니까"
"그게 다야?"
"뭐가 더 있어야 해?"
"아니"
여자는 맞는 말이라 생각했다. 그의 대답에 여자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고 가만히 생각했다.
"뭐가 그리 심각해? 글이 안 써지는 거야?"
"아니, 그냥"
"말해봐 뭔데?"
"그냥 여주가 너무 안쓰러워서 그래"
"별 걸 다 걱정한다. 그럼 해피엔딩으로 쓰면 되지 뭘 그리 심각하게 생각을 하고 그래"
"편집장님이 기혼이면 어떻게?"
"그럼 막장되는 거지 뭐.
기혼이면 그냥 여주가 고백하고 제자리로 돌아가면 훈훈하게 마무리되는 거 아냐?"
여자는 웃었다. 훈훈한 마무리 뒤에 숨겨진 여주의 마음은 남자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모습에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랄까.
"오빠! 여주가 해피엔딩이 되려면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까? 오빠도 생각해 봐"
"음.. 짝사랑에 해피엔딩이 될 수 없지. 일단 상대도 같은 마음이 아니잖아? 니 글만 봐서는 남주도 뭐 딱히 여주한테 별 마음도 없는 거 같고, 더 이상은 여주만 더 비참해지고 만신창이 될 거 같은데"
"어?? 남주가 여자한테 관심 없는 거 같아??"
"어"
"왜?"
"그냥 내 느낌에 그래"
"안사랑해도 스킨십이 가능해?"
"어"
"어떻게?"
"어떻게가 아니라 가능해. 원나잇도 있잖아"
남자의 말이 다 맞다고 여자는 생각했지만, 여자가 쓴 글에 남주가 여자한테 마음이 없다는 사실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 해도 마음이 없는데 스킨십이 가능하다는 게 난 이해가 안 돼"
"나도 네가 절대 이해 못 한다에 한표!
그리고 남주도 여주가 원나잇이나 헤픈 여자일 거라 생각할 수 있는 거 아닐까?"
"아...????"
여자는 생각지도 못한 그의 대답에 진짜 남주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여자의 표정에는 여주가 남주에게 그렇게 비치는 건 정말이지 싫은 내색만이 얼굴에 드러났다.
여자는 여주가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지에 대한 다음 소설을 곰곰이 생각했다. 남자는 다시 여자 허벅지에 머리를 두고 누웠고, 여자의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결국 그의 손은 반바지 속에 넣었고 여자에게 물었다.
"할래?"
"오늘 하는 날 아니잖아. 그리고 나 점심 약속 있어서 지금 준비하고 나가야 해"
"어디 가는데?"
"일식집. 출판사님이랑 사무실 사람들이랑 다 같이 점심 먹기로 했어"
"나도 같이 가"
"오빠가 왜가?"
"니 편집장님 얼굴 제대로 다시 보려고 그런다 왜"
"아니라니깐!!!!! 편집장님 나보다 많이 어리다고 했잖아"
"일단 준비해. 데려다줄게"
그렇게 여자와 남자는 집을 나섰고 일식집으로 가는 내내 그 가상의 편집장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