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49 확인사살

호호아줌마v 2024. 9. 12. 01:45


그를 향한 나의 행동에는 명분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그를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꽤 확실한 명분말이다.
그러나 그의 행동에는 어떤 명분이 있을까?
진짜 내가 그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눈치라도 챈 걸까?
아니면 그도 나와 같은 마음일까? 전자든 후자든 나에게는 가슴 벅찬 일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봤는 데 눈치는 챘을 수도 있지만, 같은 마음은 아니라는 것이다.

#1-1 태워줄게요 편 뒷이야기, 에필로그

그는 내가 동그란 구멍, 맨홀뚜껑, 하수구를 굉장히 무서워하는 걸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나 나를 태워준 날, 그는 나를 하수구가 있는 곳 근처에 차를 멈춰 세웠었다ㅜ내릴 때 나는 하수구와 눈이 마주쳤고, 적잖게 당황했고 굉장히 무서웠다. 그렇다고 데려다준 그에게 근처에 하수구가 있다고 손 잡아 달라고는 차마 말할 수는 없었다. 그때 그 일로 그는 나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나에 대한 마음이 없다는 걸 확신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렇다면, 그의 행동의 명분은 무엇일까? 아주 개방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인가? 아메리칸스타일처럼? 일명 오는 여자 안막고, 가는 여자 안 잡는 그런 나쁜 남자인가? 아니면 나를 통한 일상의 일탈인가? 원래 이런 사람인가? 나와 비슷한 관계의 작가들이 한 트럭 있는 건 아니겠지? 갑자기 그의 명분이 너무도 궁금하다.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인지라 당장 물어보러 그에게 가고 싶다.
분명, 용기 없고 소심한 나는 그에게 수없이 다가가는 상상을 수도 없이 했지만, 결국은 다가가지 못했고 그래서 혼자 짝사랑하기로 마음먹었었다. 사적인 마음을 많이 품고 있었지만, 나는 어디까지 공적인 내용으로 그를 만나러 갔었다. 그러나 그 공적인 것을 사적으로 바꾼 건 그가 먼저였다. 그런 그의 명분이 궁금하다.
추측으로, 내가 그를 좋아하는 걸 눈치채고, 재미 삼아하는 장난일 수도 있겠다 싶다. 조금 많이 슬픈 일이기는 하나, 뭐 이게 사실이라도 괜찮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어디까지나 그의 마음은 내가 쥐락펴락 할 수 없는 것임에 분명하니까.  그래도 나는 직접 내 입으로 그에게 물어보고 답을 들어야겠다 다짐해 본다. 상처받더라도 이유는 알아야 하므로.
그를 보고 와서 한없이 들뜬 기분이 한순간에 촤악ㅡ 가라앉았다. 그를 향한 내 진심이 나를 향한 그의 장난으로 내 사랑이 받을 상처가 걱정된다.
나의 걱정에 반문하듯, 1년이라는 시간을 자주는 아니더라도 꾸준히 봐온 바로는 그는 바른생활 사내임이 틀림없었다. 변함없이 일관된 부드러운 표정에 말투와 행동까지 그건 학습된 것이 아니라 몸에 베인 듯한 그에게서만 묻어나는 친절함이었다. 그런 그가 너무나 좋았다. 그게 그가 가진 연륜임을 알고 그를 동경하기 시작했고, 여유 있는 모습에서 어른 남자의 매력을 가진 그가 나에게 남자로 성큼 다가왔다.
여기에도 또 나는 반문한다. 바른생활 사나이도 장난은 칠 수 있지. 암 그렇고 말고. 장난은 바른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다 하는거라고 말이다.
그를 다시 보러 갈 때까지 당분간 내 사랑의 날씨는 흐림이 지속될 거 같다.
그를 오랜만에 봐서 너무너무 좋았었는데,
일기예보에 잡힌 비가 하늘마저 내 편에서 응원하고 있다고 행복했었는데,
비도 많이 내리던 날, 그를 볼 수 있었음에 최고의 날이었는데,
배웅과 배려를 받고 그도 나와 같은 마음일 거라고 잠시 들떴었는데,
그를 잠시라도 온전히 가져보겠다고 다짐하고 벅찼었는데,
여기저기 남아있는 그의 흔적에 그 그리움 마저 달콤했었는데,
그가 다 망쳐버렸다.
그의 알 수 없는 명분이 다 망쳐버렸다.
절대 나와 같은 명분을 바라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그 명분이 장난이 아니었으면 하는 거다. 그의 장난으로 내가 하는 사랑에 먹칠하기는 너무도 싫으니까. 그에게는 내가 첫사랑이 아니겠지, 짝사랑도 아니겠지. 당연하다. 이런 거까지 욕심 낼만큼 어리고 어리석지 않다. 그러나 나는 그와 다르다. 나에게는 그가 첫사랑이자 짝사랑이다. 그런 내 사랑을 다치게 놔둘 순 없다.
내 사랑을 지키기 위해선 답은 하나다.
이제 그를 보러 가지 않는 것.